2007. 12. 26.

2007.12.26. 꿈

꿈속에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뒤를 쫓고 있었고,
바실한 흙 위에 자리잡는 그 사람의 물기어린 발자욱에선
퐁퐁퐁 물냄새가 나는 하늘빛꽃들이 피어났다.
한송이 두송이 줍던 꽃들은 이내 한아름 꽃다발이 되어 내 품에 안겼다.
더이상 주울 수 없는 꽃들은 피어난 후 바로 회색빛으로 스러지며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가고 있었다.
잡히지 않는 그 사람의 옷자락과,
흙이 묻어 점점 더러워져가는
내 하얀 옷과 맨발바닥.

2007. 12. 13.

2007.12.13. 꿈

방을 구했다. 어쩐지 방을 구한다는 말에 초급일본어를 같이 듣는 학교학우가 괜찮은 방이 있다고 해서 구해준 방이었다. 조금 오래된 집에 포함된 큰 방을 내놓은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일단 방을 쓰기로 하고 찬찬히 둘러본다. 한국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일단 집주인인듯 했다. 거실쪽에서 밥을 먹으면 된다고 했고 거실쪽엔 세탁기와 작은 오븐, 그리고 주방이 있었다. 내방은 이중미닫이로 되있었고 복도쪽에서 훤히 들여다볼수 있는 구조였다. 군데군데 젖빛유리와 투명유리가 마블링되있는 이상한 미닫이의 유리. 방안엔 모든 가구들이 옵션인지라 화장대부터 해서 필요했던 수납장들까지 모두 있었다. 거실에서 맛난 냄새가 난다. 가보니 여자인줄 알았던 남자가 요리를 하고 있다. 회도 치고 튀김도 해놨다. 말을 걸었는데, 일본인인가? 일본어를 너무 잘한다. 나는 냉큼 저는 일어를 조금 배워서 그렇게 빠르게 말하면 못알아들어요-했고 그 사람이 천천히 말해주어도 못알아듣고 말았다. 할머니 4명과 조금 젊은 여자 한명이 집주인인듯했다. 밥을 먹고 그들은 산책을 하러나갔고 이상하게 산책하러간다는 말은 한국어였다. 방에 돌아와보니 그새 너무 낡았다. 그들의 물건들이 가구뒤에 숨겨져 있었다. 장판군데군데가 찢어져있다. 순간 아직 계약금을 주지 않았던 게 생각이 났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2007. 12. 9.

2007.12. 9. 꿈

베이지색 벌판이 있었다. 따뜻한 공기, 간간히 마른 풀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베이지색, 아주 엷고 곱게 마른 풀들이 자리한 벌판 한가운데 길이 나 있었고 그 한가운데 내가 서있었다. 내가 나인지는 모르겠고 그저 맨발에 긴 머리였던 게 기억난다. 소녀스럽게도 무릎을 살짝 덮는 길이에 소매는 손을 덮고도 한참이나 긴, 원피스형 잠옷을 입고 있었다. 저 멀리 길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단단한 나무가 서있다. 죽은 나무, 잎사귀는 하나도 없이 그저 덩치만 큰 검고 마른나무. 어서 가란 듯이 바람이 불때마다 사부작, 마른 나뭇가지가 소리를 냈다.


한 발짝 내딛자 바삭바삭한 마른 풀들이 기분좋게 부서졌다. 스스슥 하고 바스라진 잎사귀가 날아갔다. 그렇게 한발한발 천천히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너머에서 붉은 색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들기 시작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것 같다. 작게 팡, 팡, 팡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꽃이 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개양귀비, 빨갛고 빨간 그 꽃의 색깔. 온화한 노란빛의 벌판을 삽시간에 붉게 물들이는 그 꽃. 아름다우나 무섭기 시작했다. 이내 몇미터 되지 않는 공간까지 꽃들이 피어났고 내 주변 한팔 간격을 두고서 빙둘러 채워졌다. 오로지 내 주변 빼고 모든게 꽃 이었다.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뒤를 돌아봤다. 온통 빨간 꽃 천지인 그곳에서 내 검은 나무만 온전히 그 색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나무가 불타기 시작했다. 도와줄수가 없어, 아무도 없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 공간 자체가 정말 두려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타오르기 시작한 나무는 한참이나 타다가 서서히 옆으로 스러졌고 구우웅 하는 육중한 소리와 노랗고 투명한 불티를 날리면서 정말 없어지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꽃들에게 불이 번지기 시작했고, 그 불들이 뜨겁고 뜨겁게 온 벌판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옷 앞자락들까지 불에 먹히려는 순간 깨어났다.

2007. 11. 22.

(Movie)국화꽃 향기.

국화꽃 향기 (The Scent Of Love, 2003)


97 분 개봉 2003.02.28

감독 : 이정욱
출연 : 장진영(민희재), 박해일(서인하)
국내 등급 : 15세 관람가

그녀의 머리칼에서 국화꽃향기가 난다...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본다면 좋을 영화다. 스쳐지나가는 잡생각 하나가 꼬리를 물고 물고 물고 물고 물어서 물었으니, 결국 이 영화는 환타지 영화라는 것이다. 지고지순하게 7년동안 짝사랑해왔으며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남자와 그 모든 걸 이해해주고 아들의 베냇저고리를 편지와 함께 보내오는 시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끝을 알고난 후에도 아내가 원하는 대로 모르는 척해주는 남편. 이게 무엇인가. 재희- 거의 모든 여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는, 이상적인 남자 그리고 환경일 뿐이다. 고작 여자에게 아기와 맞바꿀 무서운 병을 안겨주는 것 대신 원하는 모든 걸 주는 영화는 아주 감상적이고, 긴장감없이 그저 훤히 보이는 끝을 제공한다.

어쩌면 그래서 편하게 볼 수있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감독이(혹은 원작이) 원하는 대로 감정의 끈을 풀고 엉엉 울어버린다거나 그런 환타지 속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쉽게 볼 영화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매번 진지하게 감명받을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막상 보면 폭 빠지고 마는 것이 이런 영화인지라 여러가지 추억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꼭 환타지만은 아닌 것이, 대개 '결혼'하기 전에 좋아하는 여자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마냥 다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남자들도 참 많으니까 말이다.

2007. 11. 11.

(Movie)색, 계 2007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18세 관람가 157분 개봉 2007.11.08

감독 : 이안

출연 : 양조위, 탕웨이


순식간에 157분이 지나가버렸다.
욕망, 그리고 경계.
제목 그대로를 본 영화였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연극부에 들어갔던 치아즈가 막부인이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여인네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시작한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사랑이 아닌 이유로 첫섹스를 해야했고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경계로 날이 선 남자에게 다가간다. 매국노인 그를 죽이기 위해 뭉쳤던 연극단원들은 다같이 거친 살인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극을 현실로 들여온다.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을 진실이라고 말해야하는 여자, 왕 치아즈. 영국으로 가기위해 시작되었던 연극은 그녀의 삶을 파괴해나간다.

끝없이 경계를 하는 이장관에게 3년만에 접근이 성공을 해서 이장관과 폭력적인 첫 섹스를 치뤄내고 혼자남겨진 방안에서 짓던 왕치아즈의 작은 웃음이 나를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작고 작은 입술과 번진 빨간 립스틱.

도발적이었다.

적나라한 몸과,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섹스. 그 사이에서 오가는 긴장감있는 경계선의 움직임. 먹느냐 먹히느냐와 같은 가장 본능적인 세력다툼으로 가득찬 시간 속에서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둘만의 시간 속에서 서로 지배하고자 몸으로 다투는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몸으로 각인하는 감정과 둘이 얽히면서 만들어가는 격정적인 시간속에서 치아즈와 이장관은 말보다 진실한 몸짓과 절정에 오른 서로의 얼굴, 땀방울을 보면서 진짜 모습을 확인하려한다.

이내 치아즈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연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그녀를 지배하려고 한다. 한번도 스스로를 생각할 기회가 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이장관은 표정을 만들어야 할 이유를 주고, 무언가 이루어야 할 목적을 주었기 때문일까.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을 보여주던 치아즈가 유혹과, 순수, 초조함등 '여자'로서 남자에게 보여주는 표정을 내보이는 건 이장관 앞뿐이었다.

결국엔 옷깃에 매달아놓은 독약도 먹지 못하고, 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찾으러 간 그 자리에서 이장관의 사랑을 확인하고 들릴듯 말듯 도망가라는 말을 내뱉는 치아즈. 해피엔딩이란 것을 예상할 수 없는 어두운 잿빛으로 회상되던 그녀의 과거처럼 이미 자신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그가 사라진다는 것. 결국은 그것 역시 절망이었을 것이다.  투쟁끝에 얻은 자유를 앞에 두고 스스로 족쇄를 차고 감옥으로 돌아가던 죄수들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연극, 리허설도 없고 도망갈 수 있는 뒷무대도 없이 마련된 그 무대위에서 새빨간 꽃같은 치아즈의 삶은 그렇게 사그러들고만다.

물론 해피엔딩, 손붙들고 도망가 사랑한다는 이유하나로 잘먹고 잘사는 장면을 어린애처럼 기대하긴 했지만 그저 저 갈길을 가는 엔딩도 담담해졌다. 치아즈가 떠난 방에 놓인 침대위에 앉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침대를 매만지던 양조위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렸다. 사랑, 그 이상인 경계를 풀게 만들었던 여인이었으니 더 그럴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말보다 진실된 표정을 보았으니까 말이다. 손으로 목을 졸라 그녀의 움직임을 억압하고, 혁대를 풀러 그녀를 내리치며 지배의 욕구를 보이던 그가 하찮은 돌이라던 다이아를 선물하며 내뱉던 '다이아를 낀 당신의 모습이 보고싶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caution이 정말 아무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던 순간이었다.
 
 
 

2007. 6. 28.

(Movie)두번째 사랑(Never Forever)

두번째 사랑 (Never Forever, 2007)


101분 개봉 2007.06.21

감독 :김진아

출연 :베라 파미가, 하정우




"사랑해요.."






그때까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던 게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본다는 것. 불륜이었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그건 절대 로맨스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달라진다. 가끔은, 용서할 수 도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로맨스가 된다면 말이다. 절망과 슬픔의 나날속에서 그 실낱같은 끈이라도 잡고 살아나고 싶다면.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하루하루 근근히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하, 그리고 잘나가는 재미교포와 결혼했지만 결코 그에게 합류할 수 없는 백인여인 소피.

자꾸만 자살을 시도하는 불안정한 남편을 보면서 점차 힘들어지는 소피는, 그 위태로운 생활을 구하기 위해 남편과 흡사하다고 생각되는 지하를 찾아온다. 한번 섹스 할때마다 300달러, 임신이 확인된다면 3만달러. 안정을 찾기 위한 아주 위험한 거래가 시작된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섹스약속들을 지켜나가면서 지하는 지독하게 푸른 눈이지만 그만큼 슬픈 아우라를 가진 그녀가 궁금해진다.

두 사람이 전혀 다르기에 서로의 벽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하의 분노가 폭발하며 터져나온 감정으로 인해 두사람의 일방적이기만 했던 관계가 무너진다. "돈을 주고 한건 내가 처음인가요!!" "돈을 받고 한건 내가 처음인가요!!"라고 서로 외치는 다른언어의 다툼. 알수 없는 질투가 분노로 변하고 결국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 그리고 그 뒤로 흐르던 계속 영화의 긴장감과 그 텐션있는 감정선을 늦추지 않던 현악기의 선율. 목적과 돈이 얽힌, 사랑이 없어야만 가능한 관계가 '사랑'이라는 것이 시작되면서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일상생활, 사소한 옷차림까지.. 길바닥에서 부서진 의자를 집어들고돌아오거나 보풀가득한 이불을 가지고 살던 지하는 복숭아, 꽃..면이불. 그녀를 위한 물건들로 방을 채우기 시작한다. 병균으로 가득찬 세상에 온것마냥 옷을 벗고나서 그 옷을 가지런히 비닐봉투에 챙기던 소피는 그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게 잠을 잘수 있게 된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던 그녀가 남의 아이라는 것을 안 남편이 화를 못참고 발길질을 해댈때, '내 아이'라면서 울고 불며 신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아마도 거기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같다.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순간. 혹은, 행복해질 나를 찾으려던 순간.


서로를 향한 소박한 변화하나하나가 눈에 보였던 영화였기에, 과감히 생략해버린 엔딩이 아쉽지가 않았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관객에게 미래를 맡겨버리는 영화가 이리도 밉지 않아져 버린걸까. 파도소리, 나부끼는 원피스, 그리고 그녀의 아이. 분명히 그녀손으로 찾은 그녀의 미래이기에 이렇게나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