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22.

(Movie)국화꽃 향기.

국화꽃 향기 (The Scent Of Love, 2003)


97 분 개봉 2003.02.28

감독 : 이정욱
출연 : 장진영(민희재), 박해일(서인하)
국내 등급 : 15세 관람가

그녀의 머리칼에서 국화꽃향기가 난다...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본다면 좋을 영화다. 스쳐지나가는 잡생각 하나가 꼬리를 물고 물고 물고 물고 물어서 물었으니, 결국 이 영화는 환타지 영화라는 것이다. 지고지순하게 7년동안 짝사랑해왔으며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남자와 그 모든 걸 이해해주고 아들의 베냇저고리를 편지와 함께 보내오는 시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끝을 알고난 후에도 아내가 원하는 대로 모르는 척해주는 남편. 이게 무엇인가. 재희- 거의 모든 여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는, 이상적인 남자 그리고 환경일 뿐이다. 고작 여자에게 아기와 맞바꿀 무서운 병을 안겨주는 것 대신 원하는 모든 걸 주는 영화는 아주 감상적이고, 긴장감없이 그저 훤히 보이는 끝을 제공한다.

어쩌면 그래서 편하게 볼 수있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감독이(혹은 원작이) 원하는 대로 감정의 끈을 풀고 엉엉 울어버린다거나 그런 환타지 속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쉽게 볼 영화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매번 진지하게 감명받을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막상 보면 폭 빠지고 마는 것이 이런 영화인지라 여러가지 추억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꼭 환타지만은 아닌 것이, 대개 '결혼'하기 전에 좋아하는 여자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마냥 다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남자들도 참 많으니까 말이다.

2007. 11. 11.

(Movie)색, 계 2007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18세 관람가 157분 개봉 2007.11.08

감독 : 이안

출연 : 양조위, 탕웨이


순식간에 157분이 지나가버렸다.
욕망, 그리고 경계.
제목 그대로를 본 영화였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연극부에 들어갔던 치아즈가 막부인이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여인네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시작한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사랑이 아닌 이유로 첫섹스를 해야했고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경계로 날이 선 남자에게 다가간다. 매국노인 그를 죽이기 위해 뭉쳤던 연극단원들은 다같이 거친 살인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극을 현실로 들여온다.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을 진실이라고 말해야하는 여자, 왕 치아즈. 영국으로 가기위해 시작되었던 연극은 그녀의 삶을 파괴해나간다.

끝없이 경계를 하는 이장관에게 3년만에 접근이 성공을 해서 이장관과 폭력적인 첫 섹스를 치뤄내고 혼자남겨진 방안에서 짓던 왕치아즈의 작은 웃음이 나를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작고 작은 입술과 번진 빨간 립스틱.

도발적이었다.

적나라한 몸과,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섹스. 그 사이에서 오가는 긴장감있는 경계선의 움직임. 먹느냐 먹히느냐와 같은 가장 본능적인 세력다툼으로 가득찬 시간 속에서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둘만의 시간 속에서 서로 지배하고자 몸으로 다투는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몸으로 각인하는 감정과 둘이 얽히면서 만들어가는 격정적인 시간속에서 치아즈와 이장관은 말보다 진실한 몸짓과 절정에 오른 서로의 얼굴, 땀방울을 보면서 진짜 모습을 확인하려한다.

이내 치아즈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연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그녀를 지배하려고 한다. 한번도 스스로를 생각할 기회가 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이장관은 표정을 만들어야 할 이유를 주고, 무언가 이루어야 할 목적을 주었기 때문일까.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을 보여주던 치아즈가 유혹과, 순수, 초조함등 '여자'로서 남자에게 보여주는 표정을 내보이는 건 이장관 앞뿐이었다.

결국엔 옷깃에 매달아놓은 독약도 먹지 못하고, 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찾으러 간 그 자리에서 이장관의 사랑을 확인하고 들릴듯 말듯 도망가라는 말을 내뱉는 치아즈. 해피엔딩이란 것을 예상할 수 없는 어두운 잿빛으로 회상되던 그녀의 과거처럼 이미 자신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그가 사라진다는 것. 결국은 그것 역시 절망이었을 것이다.  투쟁끝에 얻은 자유를 앞에 두고 스스로 족쇄를 차고 감옥으로 돌아가던 죄수들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연극, 리허설도 없고 도망갈 수 있는 뒷무대도 없이 마련된 그 무대위에서 새빨간 꽃같은 치아즈의 삶은 그렇게 사그러들고만다.

물론 해피엔딩, 손붙들고 도망가 사랑한다는 이유하나로 잘먹고 잘사는 장면을 어린애처럼 기대하긴 했지만 그저 저 갈길을 가는 엔딩도 담담해졌다. 치아즈가 떠난 방에 놓인 침대위에 앉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침대를 매만지던 양조위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렸다. 사랑, 그 이상인 경계를 풀게 만들었던 여인이었으니 더 그럴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말보다 진실된 표정을 보았으니까 말이다. 손으로 목을 졸라 그녀의 움직임을 억압하고, 혁대를 풀러 그녀를 내리치며 지배의 욕구를 보이던 그가 하찮은 돌이라던 다이아를 선물하며 내뱉던 '다이아를 낀 당신의 모습이 보고싶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caution이 정말 아무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