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4.

(Movie)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2005.11.10  107분  미국
감독 미셸 공드리




clementine

조엘, 삭제기술자들이 곧 여기 올거야.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날 데려가는 건 어때?

내가 속하지 않았던 그런 곳 말이야.

그리고 아침까지 거기 숨어있는 거야.

joel

-난 너 없는 곳은 기억이 나질않아.




가끔은 그게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조차 헷갈리는 때가 있어. 그때가 언제였지? 그런일이 있었나.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이었나? 이런 생각들과 함께 밀려드는 기억의 잔상들. 언제였는지 모르는 걸까. 아니, 이제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거야. '망각', 잊어버린 것은 저 멀리 사라져 없어지는 거지. 너와 나는 언제나 불안정함 가운데에서 기우뚱댔지. 그와중에 나는 안녕을 꿈꿨고, 아마도 너는 탈출을 꿈꿨던 것같아.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는 너와, 다른 어딘가가 아닌 여기 이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내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것은 오히려 기적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르지. 아주 사소한 단어하나가 귓가에 맴돌거나, 분명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 까마득하게 먼 날이었던 것같기도 해. 아마도 한참이나 지난후에는 그저 이십대의 어느 기억으로 이 순간들을 기억하겠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두 손바닥위엔, 추억이 적힌 얇은 다이어리가 놓여있어. 이걸, 오늘은 버릴 거야.

그렇지만  역시 너를 잊어버리는 건 참 어려울 것같아. 아직도 가끔은 네가 궁금해. 그저 스쳐간 사람에 대한 기억일까? 아마도 나는 아직도 내가 지은 이 집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웅얼대고 있는데, 너는 어떨까. 그아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미래를 생각하면 여전히 캄캄해. 분명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절망에 울었던 날들이 있었지. 그건 각인이 되어 너를 생각하면 나는 순간 아득한 절벽에서 밀려 떨어진 것처럼 후욱-하고 허공을 나는 듯해. 끝도 없는 저 밑으로 떨어지는. 아주 무섭고, 아주 두렵지. 그때 내사랑을 집착이라고 말한다 해도 나는 할말이 없었지. 이렇게나 먼 시간을 지나쳐왔지만, 아직 나는 그때의 어두운 꿈을 가끔 꾸곤해.

한강변을 걸었어. 캄캄한 밤이라 온통 노란 가로등 불빛으로 덮혀진 붉으면서도 노란 세상들이었지만, 그래도 풀들은 잘 자라고 있고 공기도 많이 따듯해졌어. 오래전, 나는 이길을 너를 생각하며 울었지. 그래, 전화를 하면서도 받지 않을땐, 그애와 함께 있구나 하며 섭섭했지. 차고 지는 달을 아마도 그렇게 편안하게 만날 수 있을 때가 다시 올수 있을까. 두시간, 혹은 세시간에 걸친 달과의 산책, 가끔은 입꼬리가 올라간 웃음을, 가끔은 한가득 볼에 무언가를 넣은듯 부풀은 달. 캄캄하고 깊은 밤하늘에 덩그라니 떠있었고 나는 강둑에 기대앉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내 기억속에 있는 추위와 내 기억속에 있는 상처를 모두 밤하늘에 쏟아내버리고 그저 훅-하고 사라져버리고 싶었지. 귓등으로 세찬 바퀴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싸이클자전거 소리가 지나가고, 간간히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 같은 걸 들었어. 그리고 등돌린 채로 한참이나 울먹였어.

아마도 그때였을거야. 마음 한가득 차던 눈물을 참지 못해 터뜨려 버렸을 때가. 아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마음 한구석에 숨겨버릴 때가. 두번째로 네게 말하던 날이었어. 나는 우리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덮어버리고 싶었어. 마치 눈을 가리면 세상이 사라져버린다고 믿는 아기들처럼, 그저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그게 사라지는 걸로 믿고싶었던 거야. 끔찍한 시간이 될거라는 걸 알면서, 정말 가시밭길일게 분명한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꾹꾹 발끝과 발 뒤꿈치로 눌러밟으며 걷기로 했었어. 그리고 얼마 후엔 난생처음으로 내 스스로 이별을 하는 것을 지켜볼수 있었어. 이렇게 아플바에야, 이렇게 힘들바에야..하면서 조금씩 포기를 해나갔던 거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울면서 헤어지자고 말했어. 이내 번복하고 또 번복하고 하면서, 나는 그렇게 힘들게 이별이란 걸 했어. 일방적인 통보는 내게 이별이 아니었으니까. 내 스스로 한 이별은 그게 처음이었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자전거를 타는 날들이 많아졌고 이내 나는 괜찮아지기 시작했지. 스트레스 때문에 먹지 못하던 밥을 다시 먹을 수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덜 아프기 시작했어. 군더더기 없이 행복한 날들. 오히려 혼자 인게 편했던 건 아마도 지나치게 둘이었을 때가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일 오래전에 좋아하던 가요나, 오래된 팝송을 듣고 하는 동네 산책에 나는 행복했어. 그나마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때는 그때였을 거야. 혼자인 것이 그래도 낯설을 때였으니.

되돌릴 수가 없었어. 입안 가득히 깔끄러운 그런 시간들로 기억되는 과거들. 다시 되돌려보려해도 재생되지 않는 기억들, 이미 오류로 가득한 머릿속은 아름답고 순수한 날들로 나를 돌려보낼 수가 없었어. 미친 듯이 갈증에 쉽싸여 눈물을 마시던 시간, 아픔을 견뎌내기 위해 또다른 상처를 내던 시간. 남을 사랑하기 위해 내게 상처내던 시간들. 그런 일을 다시 내게 하고 싶지 않아.

엊그제 나는 꿈을 꿨어. 내가 손에 쥔 무언가로 단단한 알을 깼지. 알에선 한가득 뭉개진 검붉은 액체들과 그리고 투명하고 진득한 액체들이 한데 뒤섞여 흘러나왔어. 깨진 알을 뒤로 한채 걸었갔어. 하늘은 너무나도 파랗고 구름 하나 걸려있지 않았어. 그저 새파란 하늘과 샛노란 태양, 아주 큰 태양을 보았어. 나는 눈이 부셔 눈을 손으로 가렸다가 울었어. 아주아주 기쁘고 아주아주 행복했었던 것같아. 잠에서 깨어났을 땐, 한낮이었지. 그리고 단한번도 놓은 적 없던 무언가를 놓아버린 느낌이었어.

얼마나 멀리 떠나온걸까. 그때의 기억들은 모두 삭제되었거나 지워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 그 시간들은 가끔 가깝게 다가왔다가 훌쩍 멀리 떨어져가. 난 여전히 네가 좋아하던 것을 가끔 기억해. 그러나 절망속에서도 가끔은 풍요롭던 나날들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테니, 이제 웃어도 되지 않을까. 언젠가 내가 큰 사람이 되어서, 그러니까 아주 마음이 큰 사람들. 내 마음에 누군가를 담고 내 아이들을 담고나서, 우연히 너를 만나면 그렇게 말하고 싶어. - 고마워, 나는 그래도 살아있어. 이렇게나 잘.

여전히 나는 이곳에 서있고, 이곳에서 살고, 이 시간들을 보내. 기억을 또다른 기억으로 덮어가면서 한발자국씩 나름 고민해가며 딛어가며. 함께 하던 누군가는 없어졌지만, 그 배경은 그대로 남아있어. 그 배경조차도 조금씩 얼굴을 바꾸어가며 내게 인사를 하지. 내가 언젠가 이곳을 떠날때까지 조금씩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새침한 척 하겠지. 그렇게 내게 있어 사랑은 가도 기억은 남는데,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잊지못할 사랑을 찾아 지워진 기억마저도 거슬러. 그래, 그건 그들의 이야기니까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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