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31.

2010.08.31

겨우 휴가 일주일 앞인데, 아직 나는 표도 못 샀다. 연가원은 그래서 아직 내지도 못했다. 이년만에 가는 여행, 그것도 숨쉴틈 없이 계속 아르바이트에 일이다 뭐다 해왔던 것같은데, 사람 참 하찮아진다.

점점더 가벼워진 주머니에, 내게 꿈같은 기억은 2년전 유럽여행 그게 끝이다. 머릿속이 복잡해 책한권도 읽지 못한다. 제대로 며칠 쉬어본적도, 혹은 물가에 가서 논적도 없다. 매일매일 쪼아대던 본가의 맘편하지 않은 이야기에, 하루 여덟시간, 혹은 여섯시간의 아르바이트와 학교생활에. 간신히 들어온 계약직에선 미운 오리새끼. 말할 사람없이 여덟시간을 사무실에 앉아서 온갖 사과를 해가며 업무를 본다.

지쳤다. 지쳤다면 내가 더 지쳤다.
울고싶다.

2010. 8. 30.

2010.08.31

몸이 참 많이 아파온다.

2010. 8. 26.

2010. 08. 27. 목순옥씨와 이윤기 선생님 별세.

안타깝다.

2010. 08. 27.

출근 전, 일찌감치 마지막 분량의 약을 받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전날 전화를 하고 아침에 간호사를 일찍 출근시켜 약을 받아가는 진상환자다. 덕분에 일찍 출근했다는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에게 인사를 하고, 잠깐의 상담을 마친 후 약을 받는다. 이번부터 집단 상담 치료에 들어간다는 환자는 나보다 조금 어린 스물네살이라며 소개를 시켜주었다. 스물네살인 아가씨는 인상도 환하고 얼굴도 예뻤다.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하는데, 어쩐지 악수가 낯설어 손을 잡기가 어색했다. 잠깐 이야기 나누고 있으라며 의사선생님은 보호자 상담을 마저하러 들어가버리고, 잠시 마주앉아 있는데 아가씨의 오른쪽 손목엔 흉터가 비져나와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애써 가리려고 이 더운 여름에 가죽팔찌를 끼고 있는 사람이란.

보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배시시 웃으며 조만간 흉터 지우는 시술과 문신으로 가리려 한다며 말을 건내는 이 아가씨는 자살시도를 세번이나 했다고 한다. 칼로 두번, 목을 한번 매었다는 아가씨는 그런 것같지 않게 참 구김살이 없어보였다.

계속되는 자살시도와 우울증을 어느정도 극복하고 이제 집단 상담치료를 통해 무언가 마무리를 지으려 하는 거라고 어눌한 말로 하는 아가씨는 내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미묘하게 꼬인 시선으로 다른 곳을 보며 말하는 걸 보며, 아, 저거구나 했다.

처음 보는 사이에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언니는 그러지 말아요. 나도 이젠 안그럴 거니까요. 라고 말하고선 약을 나란히 받아들고 나와 지하철을 탔다. 엄마손을 꼭 붙잡고 지하철로 가는 그 아가씨가 많이 안쓰럽긴 했지만, 어쩐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당분간 정말 약도, 상담도 받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선, 한달, 두달 후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니 선생님의 약간 걱정어린 시선이 나를 쪼았었다. 괜찮겠냐는 말을 세번, 그리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시도에 대한 통계자료를 말하며 매일매일 상담선생님에게 문자는 하라는 말을 했다. 나는 정말 괜찮아요. 하며 웃어보이고 잠도 잘자고 먹는 것도 잘먹는 거 알지 않냐며 눙을 쳤다. 그래도 반년전보다는 많이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새로한 머리도 참 잘 어울린다는 말도 들었다.



마음이 찰방댄다.


굳이 말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서야 상담선생님에게 말했었다. 그때 그 집에서 서둘러 이사를 했던 것, 머리를 그후로 단발로 자르지 못하는 이유, 한동안 서늘했던 뒷목과 여전히 무서운 기억.

2010. 8. 25.

2010.08.26.

이내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방울진 밤은 창문을 타고 창틀에 고이기 시작했다. 축축한 습기를 피해 침대를 조금더 방 안쪽으로 밀고, 조금 쌀쌀한지 사람품을 파고드는 고양이 두마리를 안고 잠을 청했다. 그런날이 있다. 내 탓은 아니지만 결국은 내 탓이게 되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평생 살아온 것보다 괴팍해진 말로 더 까칠하게 상처를 주게 되는 날.

그런 날 다음이면 어김없이 몸 어딘가가 흐트러진다. 두통이 찾아올 듯해서 두통약을 꺼내먹고 물을 마시고선 컵을 내려놓다가 그만 컵하나를 깨고말았다. 오랜만에 꺼낸 사기컵이라 나름 기분전환을 해보려고 했던 건 더더욱 안좋은 결과를 낳는다. 부주의한 행동하나하나, 그리고 행동이 느리다는 건 이제 주변사람들이 내게 고치라는 말만 하는 것들이었다.

오전 내내, 그러니까 꼬박 일을 해온지 반년이 다되어가는 것같다. 삼, 사, 오, 육, 칠, 팔. 그리고 내가 들은 말은 거짓말하는 사람과 일을 못해먹겠다였다. 빠릿빠릿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성심성의껏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무언가 하고 했었는데 어느 한사람의 눈엔 그렇게 보이나 보다.

가끔은 생각하는게, 좀 부주의한 성격과 행동이 느린 건 고치면 될 것같기도 하다. 열심히 하다보면, 내가 더 신경쓰고 남들보다 못한 만큼 더 노력하면 고쳐지겠지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고치라고 하는 것들만 많고 내가 변해야하는 것만 말한다. 참 그냥 사는데에도 신경이 쓰이고 내가 이런 사람이란게 불편해졌다. 스스로가 불편해지는 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잘하는 것들은 참 늦게 찾아낸 것들이다. 그나마 있는 손끝재주는 스무살 넘어서 나오기 시작했고, 스물세살 적부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었다. 손끝 바느질이 재미있어 재봉틀을 사고, 그림을 위해 종이를 모으고, 하지만 이 동네에 사는 수 많은 재주많은 사람들과 목표 뚜렷한 사람들 앞에 서다보면 참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딴엔 자의식 과잉이 되보려했지만 역시나 아직은 작은 탓에 나는 열등감에 메이고야 만다. 자기애 부족, 혹은 자의식 부족,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

머리카락을 반절로 자르고, 낯선 펌을 하고나면 나는 겉모습이 사뭇 달라진 어느 여자애가 되어있겠다.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빌어도 뺨을 얻어맞았던 때처럼, 내 눈은 증오감만 가득 차있지 애정이 없다. 애써서, 무언가를 찾아 손에 쥐어보려해도 참 어그러진 마음은 곧게 서기 힘이 든다. 일년, 이년 병원을 다니고, 삼년, 사년 마음을 편하게 가진다면 스무해를 살아온 내가 달라진다는 것이 사실일까 싶기도 하다.

이미 그 때에 나는 없어졌어야 했다. 고 삼. 딱 그 무렵에.

2010.8.25.

뒤틀어진 구석들이 점점 더 튀어나와, 거울을 보지도 못하고. 너무나도 역겹고 왜곡되어,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을런지도 모른다. 카드값도, 병원비도 모두 갚고나서 대충은 끝난 건가 싶었는데 역시나 구제불능. 내탓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실수하는 것은 나였다. 실수라고 했지만 실수가 아니다. 병원은 더이상 소용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다.

2010. 8. 23.

2010.08.24

오랜만에 카페에서 일하게 됬을 때 즈음, 바톤터치하듯 가게를 하기 위해 나간 커플이 있었다. 그 커플은 같이 커피 문화원을 다니고 커피공부를 한 후 외진 동네에서 카페를 열었다. 천천히 그들만의 속도로 카페를 채우고, 커피를 하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 로스팅과 함께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서로 달달하고 오글오글한 애칭으로 불러가며, 부인, 여보 하는 말들로 블로그가 채워져나간다.

연상연하커플이라 처음엔 의아한 점도 많았다만 역시 연애는 그들만의 이야기라, 오히려 더 큰 아량으로 포용하는 다정함이 부럽다. 그들이 찍은 사진과 서로를 향한 말들과 애틋함이 사진과 글에 그대로 배어나와 마음에 슬며시 번져온다.

2010. 8. 22.

2010.08.23.

꽤나 먹먹해진다. 엄마를 생각한다는 것은 더더욱이나 감정적이게 만든다. 어릴적엔 그저, 가끔 힘들어하던 엄마가 스무살넘어서 여러가지 일이 겹쳐지면서 젊었을적 고생과 함께 큰 병을 짊어지게 되었다. 몇번의 수술이 이어지고, 내가 걱정할까봐 그런 사실을 숨겼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참 저만큼 가라앉는다.

엊그제 밭에 처음 가보았을 때, 조롱조롱 열린 모든 것들이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허리가 아프면서도 굳이 그 몸을 끌고 밭에 가서 온갖 식물들을 거두는 엄마는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친구와 그런 말을 했다. 엄마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가족애를 우리가 가질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우리 세대의 여자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들이 힘들고 어렵다면 갈라서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엄마에게서도 힘들면 이혼하고 새로 살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정작 그네들은 우리의 혼삿길 걱정으로 이혼한다는 말만 해왔으면서.

내가 먹는 고추장 한숟갈, 된장 한숟갈, 호박잎 한줌 하나하나 모두 엄마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다. 결코 따라할 수 없는 맛과 그 연륜의 맛말이다. 아프면서도 내게 모시잎으로 만들고 양대콩을 박아넣은 떡을 한봉투 담아 안겨주는 엄마는 그저 건강하고 안전하게 서울에 있으란 말을 한다.

자나깨나 아들걱정보단 딸걱정이 먼저인 엄마의 입에서 언젠가부턴, 죽음을 준비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 죽기전에, 혹은 엄마가 얼마 못살것같다는 말은 언제나 그렇듯, 상실을 가장 무서워하는 내게 그 무엇보다도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와 헤어진다거나, 누군가와 이혼한다는 것보다 더 무섭기만 한 일이 바로 엄마와 이별하는 일인 것같다. 얼마전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나서 정말 살기 싫다는 말을 했었다. 내 생일 다음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어 집을 일찍 나서 서울로 왔었다. 그 후 만 하루동안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나는 행여나, 엄마가 현대인의 사망원인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살이라도 했을 까봐 받지도 않는 전화에 계속해서 전화를 해댔었다.

엄마는 내게 강압적인 말로 내 인생을 고치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결코 엄마의 욕심때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조금 많이 힘들고 맘고생도 했지만, 엄마의 인생을 보면 엄마는 내가 돈때문에 혹은 그런 학력문제로 인해 맘고생을 하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고졸이라고 무시받고, 직업이 없는 가정주부라서 괄시받았던 우리 집안에서의 삶은 내가 생각해도 왜 사는지 궁금할 정도의 고생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엄마의 삶은 인간극장에 나와도 될정도로 맘고생 몸고생 많은 삶이라, 엄마의 굵은 손마디와 다양하지 못한 옷장만 봐도 눈물이 나올 정도다. 남들은 다 사보는 좋은 핸드백 하나 못쥐어보며 살아온 엄마의 오십오년 인생은 그렇게 내 맘에 잔가시처럼 밟힌다.

호박잎을 따고, 풋고추를 따면서 엄마는 내게 그런말들을 했다. 네가 언젠가 아이를 낳고 찾아와도 우리집 마당에 풀장이 있고, 이런 개울가에서 애들 장구질치며, 이렇게 좋은 감자랑 고구마랑 멕이고, 그러고 놀다가면 얼마나 좋겠니. 생전 생각해보지도 못한 평안한 일들을 엄마는 내게서 찾고 있었다.

그런 존재가 내 새끼들에게도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한다. 언젠가 그저 유학길에 올라 외국에서 살면 좋겠다 하다가도 엄마를 생각하면 그게 참 힘이 든다. 외국으로 시집을 간 언니들도 꼭 하는 말이 언제나 밟히는 게 엄마의 모습이랬다.


그냥 맘이 무겁다. 참. 요즘엔.

2010. 8. 18.

2010.08.19.

하루하루 매일 무언가를 적어나가는 곳으로 삼기로 했다. 일상의 기록, 앞으로는 잊지 않을 것들이 더더욱 많아질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리넨 원단 5장과 보라색 더블거즈도 선세탁해놓았다. 리넨은 생각보다 내가 사둔게 많은 건 좋은데, 이게 어디서 산건지, 어느 원단이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가지 정도는 만져보고 볼에 비벼보아도 이건 어디서 산것인가 하고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딱히 정말 마음에 든다 했던 리넨은 이제 단종되고 없기 때문에 별로 아쉽진 않다. 리넨을 만지는 인구가 늘어나 좋은 것은 동대문에 가도 이젠 별로 어렵지 않게 소량구매를 할 수 있다는 것과 리넨을 갖다놓는 곳이 꽤 되었다는 거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생리대의 결정판- 이미 지난주에 만들어놓은 생리대는 꽤나 느낌이 좋아서 맘에 들지만-을 완성하면 나는 아마 본격적으로 면생리대 운동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그리고 싶은 것도 많다. 지금은 내가 즐기고 행복하고 보람찰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다. 많이 돌아온 것같지만 그래봤자 6년밖에 되지 않은 게 신기하다. 곱절로 살아버린 것같다. 종종 밤에 잠에 들때마다, 한숨이 먼저 나오는 이유는 어쩌면 이미 폐속에 가득채워진 '내것이 아닌' 허무함에 쩔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것이 아니라고 수십번 되뇌어봤자, 아직은 내 삶이 아닌, 타인의 삶같기 때문인지 좀처럼 인정이 되질 않는다.


오늘은 정말 날적이. 날적이다.

2010.08.18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이제 5번째 월급을 받게 된다. 그 사이 나는 고작 160여만원을 모았을 뿐이며, 어쩌다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때보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가고 있다. 사용가능한 휴가일은 나흘이며 2년동안 받을 수 있는 휴가는 15일이란다. 나는 손끝이 사무실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어제의 새벽 네시반은 그랬다. 잠깐 잠을 자러 들어간 나는 아침 일곱시가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세시즈음부터 잠을 잤는데, 딱 한시간 반즈음이 지나서 일어났었다. 그 시간은 침묵의 시간이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잠깐, 숨을 깊게 쉬고 몸을 뒤척이고나서, 마음속 어딘가가 뭉클해짐을 느꼈다.

하루 이십사시간을 울면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내방엔, 매트리스 하나와 책꽂이 두개, 그리고 행거가 전부였었다. 침대에 누워 하얀 벽을 보며 하루종일 울고 숨을 쉬기도 힘들어하며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고, 밝게 햇살이 들어왔다가 해가 지고 달빛이 들어오는 하루.

내가 살기 시작한 삶은 스무살 때 시작이 되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육년의 시간동안 내가 기억하는 것은 아주 빠르게 무언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빠르게 지나가고, 나는 느리게 변한다. 내 방에 쌓여있는 물건들은 고작 4년이라는 시간동안 쌓인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고, 그걸 하고 싶어서 물건들을 사모았다. 내가 뺏겼다고 생각한 스무해동안의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처럼.

그러나 내가 빼앗긴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쥔것이 없었으니 뺏길 것도 없었을 거였다. 빨리 움직이던 늦게 움직이던 중요한건 움직이기 시작했단 것인데, 나는 그 타이밍이 왜 아쉬웠던 걸까.

2010. 8. 17.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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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_하러_상경한다_브레멘_음악대.jpg




2010. 8. 15.

2010.08.15.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서울 시청앞을 꽉꽉 채운 기독교인들의 무리였다.

2010. 8. 10.

2010.08.11.

자꾸 고기를 먹으면 배탈이 나서 당분간 또 채식만 해야할 듯 싶다. 혼자 있을 때만 채식을 하는 건 효과가 없는 듯하다. 짜장면이라던가 그런걸 먹고 빙수 찬거만 먹고 하니 안그래도 약한 배가 자주 탈이 난다.

이번주는 다시 현미와 김의 주간이 되겠다.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는데, 언젠가 -_- 비타민 씨같은 영양제들을 보고 어느 영양학자가 당신은 비싼 오줌을 만드는 거라는 말을 했다던 기억이 나서 혼자 낄낄댔다.



+ 엘프녀 한장희가 또 뜨길래 엘프 검색해보다가, 언젠가 스타킹에 나왔던 이은지양이 엘프-라는 팬클럽의 집단 린치를 당해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벌써 2006년도 일인데, 여전히 그런일들은 계속 일어난다. 막말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2010.08.10. 이놈의 나라에서 내가 안살아.

이 세상에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가지 요소는 이해와 쾌락과 허영심이다.

- 디드로




학교 게시판에 보슬아치란 단어가 올라왔다. 그것이 골라내는 방법등을 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올려놓았다. 그럼 보슬아치란 무엇일까. 된장녀와 비슷하게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하는 여자를 일컫는다.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우리말인 보지와 벼슬아치를 합쳐놓은 단어인데, 한마디로 여자임을 무기로 이익을 취하는 여자를 천하게 말해놓은 단어다. 관계에 있어 우월을 점한다기 보단 금전적인 요구를 대놓고 취하는 여자들을 말하는데, 요즘엔 점점 더 그 폭이 넓어져 인터넷에서 일반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듯하다. 단어를 보면 느껴지듯, 여자'도' 쓰는 말이라기보단 남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애초에 꿀벅지라는 단어가 불편하기 시작했던 것도 특정한 신체 부위를 우월함의 조건으로 드러내기 시작함이었다. 여성의 상품화라는 게 어쩔 수 없게 이루어지는 상황은 그 못지않게 드러나게 되는 남성의 상품화 상황도 그렇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꿀벅지라는 단어가 공식적인 언론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이 십대아이돌의 등장과 맞물린다는 것이 그리 긍정적이라곤 말할 수 없겠다. 건강한 젊은 여성의 허벅지를 꿀벅지라고 이야기를 한다는데, 그게 뭐가 기분이 나쁘냐고 묻겠지만 이 문제는 정말 명백히 페미니즘의 문제를 넘어선다. 적어도 꿀벅지란 단어 밑으로 달리는 덧글들이 꿀꺽 하앍하앍 먹고싶다라는 것을 보며 마치 김하나메일을 열은 것처럼 불쾌함을 느꼈다. 성폭력특별법 이딴 제도를 갖춘들 무슨 소용이겠나.
이런 꿀벅지에 대한 예찬과 논란은 결국 그런 건강미라고 이야기되는 능력을 갖추어야 우월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이 그런 조건을 손쉽게 얻기 위해 성형과 다이어트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나 기관을 찾아가는 것은 폄하하지만, 어렵게 해서라도 그런 능력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 논리인 것이다. 이런 건강미는 태생적이라기보단 아무리봐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미이다. 애초에 문제가 되는 것들도, 여성들에게 무게와 외모를 강요하는 사회가 문제였듯이 인간적인 평등을 주장을 하더라도 엄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인 문제가 이렇게 욕망으로서 나온다.

유해진과 김혜수의 논리에서도 비슷하겠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듯이, 어떻게 유해진이 김혜수를? 이란 입장이었고, 보통 잘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면 여자가 돈이 많거나 혹은 정말 사랑하나보다라고 평하던 사람들이 그들에겐 유해진에겐 뭔가 다른게 있겠지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내 기사들은 유해진이 가진 문화적인 능력과 지식등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취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보통 그 선에 미달하는 남성들은 불쾌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루저의 난이었다. 비슷하게 남자들이 그런 기준으로 여자를 평가한다면 아주 불쾌해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뭐냐면, 그런 건전한 사상을 가진 외국인 여성들에게 밀려 한국의 대다수의 여성이 루저가 되는 미녀들의 수다였다. 까기 위한 방송 그 이상이 아니었단 이야기다. 항상 나오는 말들은 왜 한국 여자들은-이란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루저녀 사건으로 보여진 것은 남성성의 지배력이다. 루저의 난으로 인해 그들에게 불편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 한달쯤 전 저 꿀벅지란 단어가 논란이 되었을 때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자. 그 단어가 유통되었던 것은 언론이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의 반발은 그저 불편함인 담론으로 끝나버렸다. 그저 유이가 "그렇게 불리면 고맙다 정도의 반응으로 그것이 괜찮은 단어임을 납득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유이의 조건이 그것을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었던가? 자신의 허벅지로 먹고사는 회사에 있는 연예인이?

루저녀와 된장녀와 보슬아치가 그렇게 다른 단어라곤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희화화되고 비꼼의 대상이 된다. 남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여성의 욕망이다. 그렇지만 그런 취향을 가진 여성의 무리가 여성을 대표하는가. 종종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의 무리가 나와 남성들의 의견을 비호해준다. 그런데 왜 그녀들은 언론의 정면부로 조명되지 않는가. 그러나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조롱섞인 말은 없다. 그렇지 않은 찌질남, 고추장남, 뭐 그런단어들이 있을 뿐이다.

결국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야기는 미디어와 인터넷은 남성성으로 점철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얼굴은 되도록 작아야만 하고 몸매는 될 수 있는대로 예뻐야 한다. 섹시하다는 이야기가 예뻐보인다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사회다. 여성의 '빼어난' 외모와 여성의 '된장질 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가짐, 여자가 갖추어야 하는  매너가 되어버린 사회다. 그녀들의 수다가 아닌 미녀들의 수다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일정 기준이상인 외국인 여자들이 자국 여자들의 무개념을 씹어줘야하는 게 조건인 것이다. 외국인 남자를 끼고다니는 여자는 양공주고 외국인 여자를 끼고다니면 우월남인게 그들만의 세상인거다. 그 문화에서 나온 단어들이 보슬아치다.

물론 초콜릿 복근이니 뭐니 해서 나왔던 근육같은 외모적인 문제보다도, 남성에 대한 기대중에 가장 강도가 높았던 것은 키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은 후천적으로 변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니란 거다. 남자 키는 백팔십이상, 이라며 공식을 붙이는 여자들에게 갖는 남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을 것같다. 돈? 벌면 되고, 얼굴? 고치면 되는 데, 키는? 고칠 수가 없다.

결국은 루저란 발언이 가지고 온 수십건의 소송과 제작진 교체 등 타부화됬던 사항을 끄집어냈을때 어떤 소란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증명되었을 뿐이다. 소위 경영진이라고 하는 사람이 인턴으로 들어온 루저녀를 하루만에 잘랐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건 루저 발언에 대한 응징중 하나였을 것이다.

만약에 나는 180 이상의 남자가 좋다라고 했어도 문제는 그리 커지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용어만 다를 뿐이지 실제 발언되었던 180 이하는 루저와 다를 바 없는 가치관이다. 하지만 그 발언은 위너가 아닌 루저쪽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받아왔던 키에 대한 스트레스를 '모두' 발산해내 풀어낼 수 있는 공공의 배설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런 발언을 다시 침묵하고 욕망을 이야기 할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진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로 진화했다며 최면을 건다. 그걸 발설하는 순간 가해지는 린치를 보았기 때문에.

여자들이 외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들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들의 생각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유, 빈유가 여자들도 사용하는 유행어가 되지 않듯이 보슬아치 또한 공용어가 될 수 없는 것이고 그 이유는 여성들의 육체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너는 내 발 아래에 있다는 남성성이 만들어낸 단어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지나친 외모지향성이 가져온 원죄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나 공중파에서나 루저라는 말만 쓰지 않았을 뿐, 대놓고 차별하고 모욕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대기업입사원서에 기입하는 것부터, 얼굴이 안예쁘면 몸이라도 예뻐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자기관리를 못한 탓이란다.

그래서 몇몇 여자들은 외모에 대한 결론을 그렇게 내리게 된다.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예뻐지고, 어떻게든 꾸며서 다녀야겠다. 추레하게 다니고 그러면 여자취급도 못받고 취업할 때조차도 얼굴로 밀리는 세상이니까, 예쁘게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러자. 그게 남는 장사다. 우리나라 여대생들은 조그마한 가방에 책은 가슴팍에 들고 다니며 하이힐을 신고 학교에 다닌다. 공부를 하고 왔는데, 그런데 그게 여자 외모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차별하는 남자들에게 대한 대항이었을 거란 생각도 한다.

아니 그래서 꾸미고 하이힐도 신고 하다보니 자기와 어울리는 것같은 남성을 갖고 싶은 거다. 평균적으로 160정도되는 키에 매일 하이힐을 신으니 170에 남자가 나보다 컸으면 하니까 180은 됬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차도 있으면 좋겠고하는 사고방식이 정착되는 거다. 결국엔 그 미녀들의 수다에서 "개념녀 서울대생"이라며 나오는 백팩메고 다닌다는 그 여자가 현실적으로 남자들에게 대쉬는 받았는지, 혹은 여자로서 대접은 받고 살았는지가 궁금해진다. 형이라고 불러 짜식, 이러면서 동성취급받으며 너도 꾸미면 예쁠거야 라는 식의 말은 듣지 않았는지 말이다.

대체 누가 누구보고 개념없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고, 누구보고 개념을 차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중2병, 허세, 보슬아치등등, 그 단어가 생겨난 것은 아마도 그것에 대해 비꼬고 싶은 욕구에 따라서 그 말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사회화속도에 못쫓아간다거나, 개인블로그 같은 것들에서 자신을 드러냄과 동시에 포장하려는 습관, 그리고 여성임을 무기삼아 입지를 세우거나 이욕을 채우려는 사람들, 그러나 그 단어들이 끄집어내여 공공연해지면서 그 단어가 해당사항이 아닐지라도 피해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동안 스타벅스가면 된장녀라는 말이 나왔을 때, 단순히 미니홈피에 '스타벅스에서 누구와' 하며 일기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버테러를 당한 선배이야기처럼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가 된장녀였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왠지 꺼리낌해졌었다. 무언가 글을 쓰고 표현을 하면서도 이게 허세일까, 이건 중 2병인가 하며 신경이 쓰이고 어느 순간부턴 누가 밥을 사주더라도 내가 무개념인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해서 그러지말라해도 불편하지 않기 위해 찻값을 더 내고, 영화를 사곤 했다.

꿀벅지 논란이 있었을 때, 초콜릿 복근이 나오며 남성들은 그것도 불쾌하다며 그것도 쓰지말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것이 당연하게 불쾌했다면, 꿀벅지 논란처럼 그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남성들에게서 나왔어야 했던 문제라고 생각한다. 루저의 난처럼. 내가 보기엔 꿀벅지 사용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억지로 끄집어낸 문제라고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성적 불쾌함을 먼저 느꼈다. 정말이지 찌라시수준의 내용으로 도배가 된 미디어들이 고급화되긴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의 언어적인 표현선은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누구를 보며 맛있게 생겼다, 혹은 따먹고 싶다고 수군대는 말만큼이나 섹스어필을 넘어선 단어이기 때문이다. 너 매력있다의 선을 넘어선 거다. 그렇게 따진다면 병신도 그냥 장애가 있는 몸일 뿐이다. 단어를 사전적인 의미로만 이야기한다면 어떤 단어도 가치중립적이게 된다.

성교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교와 관계나 빠구리, 씹질등 전혀 다른 맥락을 가진 단어들이 있는 것처럼 그게 뭐 어떠냐 상관없으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더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할 것이다. 섹시라는 말은 너무 남용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섯살배기가 티비에 나와 봉춤과 랩댄스, 섹시댄스를 추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처럼. 꿀벅지란 단어가 가지고 오고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최소한 대체로 은어로 사용됬던 단어가 대중적인 매체에서 타이틀로 사용되는 것이 정상은 아니란 거다. 원래 공격하는 가해자는 그 심각성을 모르는 거야 당연한 거고, 피해자는 악다구니써가며 소리쳐봤자 제 3자가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이 되는게 비일비재 하지 않은가.

다시 보슬아치로 돌아가서, 여성성을 무기로 해서 남자에게 돈을 요구한다면 그걸 거절하면 끝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보슬아치란 단어는 그런 여자에 대한 비꼼이 아니라 너랑 데이트 하고 밥사는 돈을 내는데, 네가 섹스를 해주지 않으면 네 얼굴과 '보지'가 벼슬이라고 그리 비싸게 구느냐.라는 굴욕적인 어감이 들어가 있다. 그네들에겐 장희민도 보슬아치고 대다수의 여대생도 보슬아치다.

혹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구조가 문제가 아닌가. 알파걸이네 뭐네 하며 만능이길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 여자들이 자신들의 밥줄을 쥐었다 피는 게 싫고, 거기다 성적인 위치조차도 윗선을 지키는 게 불쾌한 게 아닌가. 너와 나는 평등하다면서 정작 평등함은 개나 줘버린 사회 아닌가. 알파걸과 수퍼맘이 말하는 게 무엇인가.

양성평등을 부르짖으며 여성에게 노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우리에게 일할 것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결혼을 하면 잘라버리는 회사가 있을 뿐이다. 커리어를 쌓기도 전에 결혼을 동반 선택한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별이며, 노동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들에겐 천박한 창녀근성, 속물근성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경력과 경제력을 위해 결혼을 뒤로 미루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 시집=가사노동을 선택했던 부모님 세대보다도 더 일을 하라고 외친다. 된장녀 비판에 순결, 속물근성퇴치를 외치며 여성에게 계몽을 요구하는 게 신기할 뿐이다.

어느 곳에서든 꿀벅지에 대한 항의글 밑에는 오크녀가 네 허벅지도 오크니까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달린다. 그런 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그런말이 다가온다. 왜 인생이 다큐냐며. 웃자고 한 이야기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고 한다. 아니 웃자고 한 이야기가 웃을 수 없을 정도인데 웃을 수 있겠는가. 시대를 막론하고  하위문화가 올라와 대중문화가 되곤한다. 어찌보면 고상한 척만 하는 품위있는 세상에 대한 저항감이기도 하겠다. 그렇지만 쇼는 쇼고, 현실은 현실이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싶지만 결론은 하나다. 보슬아치도 싫고 꿀벅지도 싫다. 천박하고 저급한 시선으로 만들어진 단어 자체가 불평등하고 불쾌해서 싫다. 그것을 긍정하며 맞장구치는 비뚤어진 사회 구조 자체가 싫다. 만약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들단어로 공식매체에 꿀벅지와 보슬아치에 대한 단어가 나왔다 치자. 그쪽의 개념이 머리에 꽉꽉 찬 여자들은 그 단어를 긍정할 것인가? 자신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구짓을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후회가 드는 여자라면 안 만나면 그만이다. 왜 만나가며 욕을 할까. 명품 좋아한다고 치자. 그건 취향이다. 그게 좋다면 아울렛에 가서 뒤져가면서라도 사던가 혹은 특에이급이라면서도 짭을 살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으면 돈이 있어도 딴거에다 돈을 쓰지 명품을 사지 않는다. 명품을 좋아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갖고싶어하는 게 문제인거다. 그런데 그 여자가 몸매가 예쁘다거나, 얼굴이 예쁘다고 해서 접근을 하고, 그렇게 돈을 쓰는 남자들이 있다. 그러고나서 다 사주고 돈쓰고나서 사귈래? 하고나서 튕기면 아 이년 보슬아치 하고선 욕하는게 싫은거다.
이상한 여자들때문에 보통 여자들까지 싸잡아서 "요즘"한국 여자들 어쩌고 하는 시덥잖은 글들을 보면 그냥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나한테 다 뜯어먹어? 이 개념없는! 싶으면 안 만나면 되지 않나. 그냥 그 글들을 보면서 나는 해당안되니까 열받을 필요없어라고 생각되는 동시에 나는 그보다는 개념차다며 혀를 차면서도 좀 짜증이 난다. 여자가 무슨 사고능력판단능력이 남자보다 딸리는 하등동물인것마냥. 똑같이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는 거고, 남자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자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말마따나 끼리끼리노는데, 내 주변에선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별창녀니, 생계형 소개팅녀니, 뭐 그런 여자들말이다. 더치페이더치페이 하지만 정작 동성친구끼리 밥먹으러 가서도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다. 정없고 계산적이라고 생각되서다. 이번엔 내가 살게 가 입에 붙었다. 그럼 다음 번엔 상대한테 맘 편하게 얻어 먹는다. 혼전 성관계가 당연한 것 같은 현재에도, 내 주변엔 혼전 성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여자가 수두룩하다. 추녀들인거 아니냐고? 그 답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것이다. 그게 안 예쁘다고 덜 하고 예쁘다고 더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자기 몸뚱이 무기삼아 미래를 갈구하는 여자들도 있는 것처럼 내가 보기엔 돈주고 안마방을 가는 사람과 원나잇스탠드를 위해 자기를 과시해가며 여자를 사러 가는 남자들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생각보다 직장을 다니는 남자들 또한 자신과 수준이 맞는 경제력을 가진 혹은 안정된 직장을 가진 여자를 원한다고 하지 않는가. 여자들이 키를 보는 건 병신짓이고, 남자들이 몸무게를 보는 건 병신짓이 아닌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스펙을 요구하듯, 남자들도 여자들에게 스펙을 요구한다. 혼수때문에 결혼식 엎어지는 일은 한두번인가. 내가 집을 샀는데 넌 왜 그정도 혼수밖에 못해오냐며 구박을 하는 남자들도 여전히 있다. 그들에게 그렇다고 해서 자슬아치라는 말이 붙냐 이말이다.

2010. 8. 8.

2010.08.09.

감정흐름이 조금은 완만해져가고 있다. 격한 흐름을 보이던 지난 주는 스스로 견디기 참 힘든 시간이었다.

여름이라지만 건물안에 있는 것도 밖에 있는 것도 어려운 더위로 반나절도 안되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언젠가 겨울이 오긴 오는 걸까 하는 세살박이같은 생각을 했다. 새벽에도 우는 매미소리에 깰 법도 하건만 요란했던 천둥소리에 깼을 뿐 편안한 잠을 잔다. 경계를 밟고 있는 시간들이 계속된다. 경계를 밟고 부끄럼많은 시간과 낯선이들의 냄새를 맡다보면, 그저 돌아서는 게 나은가 싶기도 하다. 끊어냄이 그저 담백한 사건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 한번도 내게 다정함을 보여주지 않았던 이 도시 안에서 숨어 끄적이는 이 글귀와 그려내는 그림과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한다.

차가운 물과 따듯한 살과, 그리고 먹먹하지만 사랑스러운 말이 있었다. 어제.

잠깐 코바느질을 하던 중에 밀어닥치듯 알수 없는 감정이 찾아와 옆방을 보았을 때에도 그가 거기 있었다. 한밤중에, 쏟아내는 피와 두통에 깨어 잠깐 눈을 떴을 때 그때도 그가 곁에 있었다. 나지막한 숨소리와 선풍기소리가 겹쳐 방안을 메우고 있었다. 별것 아닌 데도 나는 그것이 먹먹해 울었다. 나는 지금 이전과 지금 이후를 곧 잊어버릴 것이다. 최소한의 느낌만을 가슴에 묻은 채 나머지는 모두 잊어버려 그 아련함을 찾아 또다시 숨을 쉬며 더듬어 찾아 깨알같은 기억을 뒤질 것이다.

언제나 얼룩이 져있던 삶이 이대로 멈춰버린다 해도 내겐 책임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점점 무언가 향하고 싶은 지점이 커져가면서, 목표가 확고해지면서 어색하지 않아지는 꿈들에게 내어주는 자리가 커져간다. 오래전의 나에게 무안해지는 순간이다.

2010. 8. 5.

2010.08.06.브라우니

브라우니를 굽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고민거리는, 내가 생각하는 브라우니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브라우니는, 겉은 살짝 파삭하면서 속은 적당히 촉촉하고 존득존득한 느낌에 초콜렛맛 가득하고 버터맛이 혀끝에 남며 씹히는 견과류도 적당한 분태여서 씹으면서도 그 구수함과 달콤함이 섞여 풍만한 느낌이 드는 그런 케익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우니엔 호두나 피칸이 제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냥 아무것도 넣지 않고 구운 기본 브라우니에 바닐라아이스크림을 얹고 그위에 살짝 캐러멜라이즈해서 바삭하게 구운 피칸분태나, 피스타치오, 호두를 얹고나서 생 산딸기나, 블루베리같이 상콤한 생과일, 오렌지 조각도 좋고, 살짝 넣어 화사한 빛깔도 얹어주면 좋겠다한다.

하지만 그 파삭한 껍닥과 살짝 들뜨는 그 껍질을 만들기 위해선 충분한 양의 설탕이 들어가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맛보다 두세배는 더 넣어진 그 설탕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오늘 내일 소량으로 실험해봐야지. 아, 그 검은 초콜렛베이스 위에 살짝 얹혀진 고동색과 황금색이 뒤엉킨 얄팍한 껍질을 볼때의 즐거움이란.  누구는 그게 잘못된 건 줄 알고 굽고나서 접시에 올리기 전에 뜯어내느라 애먹었다고 하지만, 뭐 다들 혼자서 시작하는 홈베이킹이다 보니 이래저래 실수가 다들 많기도 하겠다.

정식으로 배운적도 없고, 누가 읽으면 이게 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으' 브라우니짜응은 저래야 이상적이다.

가끔은, 소량생산을 위한 정식 레시피들이 넣어진 그런 커리큘럼이 있는 학원이나 학교가 있었으면 한다. 언제나 바쁜 제과점이나, 그런 레스토랑을 위한 것이 아닌. 이런저런 잡다한 레시피들이 난무하는 블로그들을 보면 긴가민가 할때가 많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한것이, 대량생산을 위한 꼼수나, 그런 기초적인 지식들, 그런게 아니라면 느긋하게 집에서 이것도 넣어보고 저것도 넣어보며 우리집만의 맛을 만들어가는 것도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맛이 있으면 시장에 내다 팔아도 재미있겠고, 옆집에 뒷집에 나눠가며 먹는 재미도 있겠지.

2010.08.06.금요일.

어느 순간부터, 내겐 시간이란 개념이 하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분명 엊그제처럼 모든 걸 기억하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그날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벌써 3년반째다. 매일매일이 낯설고, 그날그날 기분의 격차가 아주 컸다. 그나마 찾아온 손바닥안의 온기와 미묘한 안정감이 위안이 되어준다.

다 잃어버린 것같은 느낌이 들때마다 덜컥 드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사실,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도 없이 점점 품에 안게 되는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라는 말이 제일 무서운 말이었던 내겐 언제나 똑같은 하루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그런 미련함이 생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빨리 잊어야지 하는 순간부터 나는 시간을 놓기 시작했던 것같다. 그러나 과거를 놓는 만큼, 나는 다가올 시간조차도 놓아버리고 있었다. 오늘이 없으니, 내일도 없고, 그저 오늘도 아닌 내가 지금 숨을 쉬는 1분 1초, 딱 고만큼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날 할일이나 내일 할일이라는 개념도 없다. 분명 내겐 언제쯤엔 유학을 하고, 언제쯤엔 전시를 하고 하는 계획이 있던 소박하고 투명한 때가 있었다. 어느메의 다이어리를 바라보다 울컥하는 마음에, 그저 덮어버렸던 것이 한두번이던가.

그러나 오늘 아침엔, 반투명하게 바슬바슬한 햇살에 그냥 웃음이 나왔다. 약간 그늘진 구름탓에 출근길이 편안해 들고나온 밀짚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었고 견딜만한 열기와 따가움이 기분이 좋았다.

어제 마신 그 병맥주의 차가움이 기억난다. 하겐다즈의 딸기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었다. 살콤살콤 싸먹던 월남쌈도 좋았다. 어느 공간을 채워나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타인을 착취하는 사랑이야기도 좋았다. 선풍기를 하나 더 놓은 방의 시원함도 좋았다. 잠깐 떠낸 코바늘 도일리도 좋았다. 한밤중에 지어낸 현미밥과 달걀구이, 그리고 밑반찬의 냄새도 좋았다. 두번 세번, 샤워한 뒤의 그 축축하면서도 시원한 느낌도 좋았다. 오늘은 집에 가다가 돗자리를 사볼까 한다. 도시락에 뭐뭐넣어서, 와인한병 들고, 책한권 들고 오후 다섯시 무렵, 해가 살짝 질무렵에 한강변에 가 엎드려 책도 읽고 초저녁잠도 자고 했음 좋겠다.

2010. 8. 3.

2010.08.03.

잘 견디지 못하는 게 있다. 매미와 거미. 바퀴벌레. 지루한 일상. 비굴함과 뭐 그런 것들이다. 요즘엔 아주 회사라고 할 것도 없는 사무실에서 여기저기 굽신대고 별에별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시키는 것만 해도 모자랄 판에 나의 능력을 보이란다. 도망가는 사람이 괜히 있는 게 아니겠지.

거기다 선풍기마저 개,박살이 났다. 길갓집에 살면서 에어컨도 없고 창문 열고 살으니 소음도 엄청나다. 하나 긍정적일 거 없는 성격에 그래도 안전한게 낫다며 최면거는 것도 싫다. 내가 선택한 집이라 불편해불편해 하는 것도 괜히 그래서 그냥 참고 살으려 했다. 신경줄이 팽팽해졌다. 가는 음식점마다 모두 휴가를 떠났고 인터넷 쇼핑몰도 휴가중이란다. 점점 벌어지는 생리 간격은 그만큼 호르몬에 내가 시달려야 하는 날이 길어진다는 이야기와 같다. 아하면 어해야 쿵짝이 잘맞는 다 하더라도 지금만큼은 내가 아하는 데 아라고 해도 어라고 해도 짜증이 난다. 놀러가려고 없는 돈 안쓰려 하면 선풍기가 박살나지 않나 남들은 같은 층끼리 엠티간다는데 나는 덜렁 혼자 떨어진 사무실에 혼자일한다. 나보고 어쩌냔 말인가 싶다.

듣기 좋은 말만 들을 수 없는 고칠 거 많은 성격인거 아는데 연속해서 며칠 듣는 거도 싫다. 뭐하나 잘하는 것도 어비 서투른 것만 보이는 거도 힘들다. 그냥 쌓인 거 풀 데도 없고 쌓인 거 위에 계속해서 더 쌓이는 것도 울고 싶고 더운 것도 싫고 건드린데 자꾸 건드리는 것도 힘들고 그나마 최면걸면서 견딜만했는 데 생리가 임박해서 신경줄 팽팽한 것도 싫고 생리때문에 여기저기 딱히 아픈 것 없이 몸이 불편한 것도 싫다. 병신보고 자꾸 병신이라 그래도 화가 나고 미달이보고 미달이라 불러도 죽고싶다 하는 세상이다. 설거지 하려고 맘먹고 주방가는 데 설거지 하라그라면 괜히 더 하기 싫어 마루에 누워버리는 게 나란 애다. 다 싫다. 지금만큼은 그냥 여자로 사는 것도 다 싫고 혼자 사는 것도 싫고 혼자 일하는 것도 싫고 거기서 일하는 것도 싫다. 제일 싫은 건 지금 그 일들을 즐기지도 못하는 그냥 돈때문에 하고 있다는 것과 배운 놈들이 더한다고 더 꼬집어가며 일을 시키는 거란 거다. 치료받는 건 좋지만 돈도 너무 들어가고 장기간이라는 것도 부담스럽다. 병원에선 돈때문에 일때문에 생리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걸 해결해주고 싶어하지만 휴식이니 여가 외엔 별다른 말을 해주지 못했다. 모난 애는 이래저래 피곤한 게다. 나 혼자 죽기는 억울하니 2012년에 망한다는 세상 내일 망하면 어떨까싶다. 여자도 그냥 군대가고 남자도 애낳고 생리하고 여자도 부양의무갖고 그냥 다 정믈 똑같은 인간이었음 좋깄다. 금성남 화성녀하지말고.

동작대교 위에서 뛰어내린 열아홉계집애는 시체도 아직 찾지 못했다 한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다음생엔 꼭 뭐라도 있는 집에 태어나 좀 행복하게 살게되았으먄 좋겠다. 다음생이라도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2010. 7. 29.

2010.07.30.

그제 꿈은 거미줄이었다. 싫어하는 곤충류중에서도 손에 꼽는 거미와 매미, 그중에 거미가 나온 게다. 문 앞에 거미줄이 가득 쳐 있어서 얼굴에 엉겨붙어 기겁을 하며 떼어냈다. 그리고 연두 형광빛 거미가 나를 보고 있었다.

여름이 점점 짙어진다. 그렇지만 물기를 잔뜩 먹은 농도 있는 바람도, 따갑기만 한 햇볕도, 올해는 참 여느 여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 몇년전 언젠가의 여름엔 잠이 없어 한밤중에 온동네를 싸돌아다니거나 혹은 약기운에 잠에 들었던 것같은데. 요근래엔, 약은 그저 스위치일 뿐 딱히 힘든 감 없이 잠에 들고, 꿈도 꾸고 한다. 그때엔 지금보다도 더 오해받는 것이 싫어 언제나 변명과 설명하기에 급급했다. 점점더 손놓아가는 게 많아지며 내게 집중할 수록 그런 것들이 점점 사라진다.

하나하나 실수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던 것들을 손놓고 그저 방만한 게으름을 느끼고 있는 요즘엔 그런 사소한 오해들이 쌓여 오히려 더 피곤하게 한다. 슬픔이나, 당황스러움이 아닌 그저 피곤함이다. 애써 하루를 행복하게 하지 않으면 그날은 불행한 현대인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밝거나 혹은 웃는 모습이 아니면, 그저 무덤덤한 하루가 타인에겐 우울과 나태로 점철된 하루로 보이나보다.

아침에 일어나, 방안에 스며든 빛들이 더이상 불편하지 않아진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두마리의 고양이가 움직이는 것이, 혹은 더 많은 무언가가 불편하지 않아졌다. 느릿느릿하지만 분명 무언가는 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잠에 들기 전, 물방울이 똑하고 수면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기 바로 그 직전의 시간엔 순간 지독했던 그때가 다가온다. 어느정도는 많이 지나쳐왔기에, 허물어지고 갈라져 기억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잊었다, 괜찮아졌다라고 생각할 무렵, 그 것들은 꿈으로 이어진다. 영영 그것들은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고 내것으로 만들어 그저 오래된 흉터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편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시간은 점점 흘러 나의 스무살은 오래전에 지나가버리고 스물 하고도 여섯해를 지나 그 한복판인 여름을 지나고 있다. 시간들을 이렇게나 집어삼키면서도 달라지기란 정말 달팽이의 속도보다도 느린 것같다.

2010. 7. 28.

2010.07.28.꿈

엠티를 갔다. 오랜만에 왁자지껄하게 놀러간거라 마구 신이 나있었다. 강가의 시원한 물과 바람, 그리고 옅은 베이지빛 나무로 짜여진 숙소. 그냥 마음에 들 뿐이었다. 2년, 짧으면 짧지만 길면 너무나도 긴 시간동안 오지 못했던 여행이었다. 그저 숨가쁘게 스스로를 고쳐잡으려고 애쓰던 시간들이지만 나는 점점 각박해져 있었다. 나를 잡으려하면 할 수록, 나는 잡쳐지지 않은채 오히려 부서지는 것같았다.

강가 그늘에 누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간식은 주먹밥이었고 차가운 보리차가 아이스박스 안에 있었다.

2010. 7. 27.

2010.07.27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서류와 엑셀작업을 했다. 6시간을 엑셀 함수와 파일링하는 데에 보내고 간신히 샌드위치 반쪽과 우유 한잔으로 하루를 보냈다.

저녁엔 인셉션을 예매해놓고, 그것만 기다렸던 것같다. 그런데, 엄마 생각이 났다. 얼마전 어둡기만 한 엄마 목소리가 맘에 걸렸다. 토요일날 지인의 집에 있을 때 전화가 오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다음날 아침에 받았을 때 혼자 내놓은 딸래미라며 걱정에 지쳐 엄마는 울먹이고 있었다.

나이가 스물여섯을 먹고, 혼자 산지 7년째가 되어도 엄마는 내 걱정을 놓지못한다. 당신의 거동불편한 허리도, 혹은 텅빈 주머니도 챙기지 않은 채 온 몸을 우리와 아빠의 형제, 그리고 외삼촌네 조카들을 키우느라 바빴을 뿐이다.

언제나 나는 엄마에게 타박을 했었다. 좀 꾸미고 살고, 좀 챙기며 살으라고.

엄마라고 그러지 않고 싶었을까. 엄마도 여자고, 엄마도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을까. 엄마는 젊은 시절을 고아가 되다시피한 세 조카를 키우느라 다 쓰고, 내가 어릴 때까지도 그 조카들을 같이 거두었다. 돌아온 건 차가운 소리 뿐이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힘을 내 키웠다. 조카들이 시집 장가를 가고, 내가 졸업을 하고, 남동생은 군대를 제대했다. 그사이에 엄마는 고달픈 일들이 참 많았다.

돈을 모을라치면, 아빠의 형제들이 가져갔고 할머니는 다른 아들들을 더 챙기는 그런 어미였다. 언제나 서운한 소리는 엄마에게 다 갔으니, 나같아도 안 살았을 이 집구석에 왜 사나 싶었다. 아들은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대꾸했고, 딸래미는 그렇게 살지말으라고 타박했다. 엄마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사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랬다. 참, 엄마는 두 자식을 바라보고 살았다.

옛날이야기 같은 우리 엄마다.

나는 엄마가 챙겨주는 생일날, 엄마가 하소연 하는 것이 싫어 집을 나와버린 못된 딸이었다. 내가 가진 것이 죄책감으로 변하는 것은 굉장히 빠른 시간이었다. 엄마나이 쉰을 훌쩍 넘어버린 시간동안 내 엄마는 스스로 꽃핀하나 사지 못하는 그런 오래된 이야기속에서나 나올법한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 참 많이 슬프다. 응어리가 가슴 한복판에 박혀 어쩔 줄을 모르겠다.

2010. 7. 26.

2010.07.26.꿈.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마루는 보이지 않았고, 그저 노란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왔는데, 중성화수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털이 복슬복슬한 노란 고양이를 맡기고, 집으로 잠시 돌아왔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나무마루에 앉아있다가 그 검고 반질반질한 나무를 다시 물걸레질을 하고나서, 매앰 맴 하고 우는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길을 나섰다.

병원은 아주 작았다. 기껏해야 한쪽에 쌓인 고양이 용품들과 쾌쾌한 냄새가 나는 철장, 그리고 진료대가 있을 뿐이었다. 이동장에 고양이를 넣고 괜찮니-하고 인사를 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동장에서 긴장을 했을 것같아 꺼내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한두시간 직후, 이동장에서 나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머리를 스다듬어주다가 문득 보니. 아까 내가 맡긴 고양이가 아니었다.

아기때부터 길렀던 그 고양이와 아주 미묘하게 다른, 정말 미묘하게 다른 고양이였다. 콧대가 살짝 낮은 고양이를 다시 이동장에 넣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내 고양이는 어디있냐며 소리치는 내게, 당황하지도 않는 의사는 그 고양이는 이미 다른 집에서 찾아갔다고 했다. 자기네 병원은 연락처를 두지 않기 때문에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울고 불며 이 고양이가 아니라 다른 고양이를 내놓으라고 소리쳤고, 한참이나 격한 감정에 화가나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 순간, 나는 이동장 안에서 나를 보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옅게 내뱉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스며들고나자 나는 그저 먹먹해서 울수 밖에 없었다.

2010. 7. 19.

2010.07.20.

어쨋거나 자전거를 다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내게 필요한 요소는 앞바구니와 폴딩이며 욕망의 요소는 자전거 뒷받침 옆쪽에다 다는 철제보조바구니다. 가격대는 무조건 40만원 아래일 것, 그리고 자전거 바퀴는 20인치 아래였으면 좋겠다.

스트라이다를 오랜기간 타면서 적응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스트라이다를 팔고 사브 논폴딩을 샀을 때, 그 자세의 적응이 너무 힘들어서 되팔아버렸던 적이 있었다. 스트라이다같은 경우 바퀴가 작지만, 나름 추진력이라고 해야하나 뭔가 쭉쭉 나간다는 느낌이 컸는데 금속체인으로 넘어오니 소음도 소음이려니와 뭔가 저항감이 컸다. 브롬톤을 탔을 때도 이건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스트라이다를 떠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바퀴크기와 기어는 별로 상관없다. 오르막길 오를 때...힘들면 걸으면 되니까.(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니까, 물이 없으면 와인을 마시면 되니까.라고 읽을 수 있을까)

여튼 몇달동안 브롬톤을 눈어귀에 붙박아둔채 계속해서 폴딩형 미니벨로를 찾았는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제품이 없었다. 가격대비 가장 좋은 것은 시보레였지만, 굉장히 흔해져서 왠지 타기 싫었고, 나의 오랜로망 비토는 접을 수가 없었다. 논폴딩 미니벨로들은 예쁜 것들이 많았고 즐겨찾기 해놓은 것도 많았는데 접이식에 왠지 모르게 내가 까다로운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고르기가 힘이 들었다.

오래전에 일본 자전거중 푸죠 콤브리같은 경우, 홍대앞에 있던 오꼬노미야끼집이었던 노사이드앞에 매일 서있었기 때문에 실물로 보고 더 반해버렸지만 2005년 당시 수입되던 한 사이트내에서 가격이 70만원이 넘어버리는 바람에 손이 떨려 사지 못했었다. 지금은 검색해도 못찾는게 내 못난 검색능력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쩐지 욕망이 사그라들어 찾게 되어도 사고싶지도 않을 듯싶다.


요근래 마음에 들었던 것은 BMW의 미니쿠퍼 디자인을 벤치마킹(이라고 쓸수 있는가.-_-)한 미니벨로 모델들이었는데, 쓰잘데기 없이 가격만 세다. 생각보다 스펙이 그리 좋지는 않은 편이며 40만원을 넘어가는 주제에 딱히 다른 자전거와의 차별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모델같은 경우 13.5킬로그램, 신모델은 11킬로그램이다.

사실 스트라이다가 편한 이유중 하나는 폴딩상태에서도 이동이 쉽다는 것도 손에 꼽을 수 있긴 한데, 생각보다 스트라이다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다 길쭉허니 접히는 그 모양새가 이동엔 편할지 몰라도 딱히 장점이 있지도, 보관에 편하지는 않았다. 그저 접고 펼때 우와-_-저건 뭐하는 자전거냐라던가 스트라이다 초기 수입시절 이런건 어디서 사냐며 5분간격으로 날 잡고 물어보는 한강에 놀러나온 서울시민들의 관심을 받을 때 왠지모를 초딩같은 뿌듯함이 날 즐겁게 했을 뿐이었다. 그 좁은 집에 집념으로 자전거를 안고 있던 나를 생각하니 다시 몸서리가 쳐진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야밤에 '솔로'라이딩을 즐기며 차라리 조금더 편안했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론 국산 자전거중에 접히지 않는 제품중에선 삼천리인가에서 나온 브리즈라는 제품이 프레임도 여성적인데다 참한 모습이라 마음에 들긴 한데, 정작 사고 싶었을 때엔 갖고싶었던 빨간 프레임이 없었다. 지금 집은 큰 자전거를 사도 야외에 보관해야하기 때문에 녹스는 꼴도 보기 싫어서라도 나는 접히는 걸 사야한다. 옆에 고등학교가 있기 때문에 도난 우려가 있는 것도 있다.

여튼 그러다 바라보던 게 일본 빈티지 자전거와 수입자전거들인데, 한참 보다보니 수입만 붙었다하면 40, 70, 80, 부르는 게 값이라 상대적으로 30만원이다 20만원이다 하는 자전거들이 싸게 느껴지는 호기로움이 생기게 된다. 빈티지 자전거를 사볼까해서 아는 자전거제작 공부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일본에서 고물자전거 가지고와 대충 그럴싸하게 만든 후 파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죽어도 새걸 사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됬다.

그러다가 한 사이트에서 이미 품절된 자전거 중에 마음에 쏙 드는 18인치 자전거를 찾았다. 그런데 이 자전거가 재수입 여부를 알 수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욕망은 집념을 낳는다고 했던가. 구글신님의 도움으로 정식 수입처부터 해서 그냥 쉽게, 구매처를 다시 찾아냈다.

33만원에 할인해서 29만원. 딱 맘에 드는 가격이긴 한데, 여름 휴가가 걸려있다. 이걸 사고 춘천을 가서 강둑을 라이딩하며 낭만을 즐겨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나의 로망은 역시 제주도다.



+관심을 받고 싶은 초글링같은 나의 마음은 외발자전거를 사볼까-_-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2010.07.19.

아직 아이같은 마음은 여전히 여리며, 여전히 성글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칼을 꾹꾹 큰 빗으로 눌러빗으면서 오늘은 마음 한켠이 아련하다.

4명의 친구와 연락이 됬다. 고등학교 무렵, 삼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서울과 부산 등 거리가 멀고 먼 어느 동네에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어느 곳에서 살더라도 손을 잡는 것도, 누군가와 키스를 하는 것도, 긴장되고 설레는 연애를 하는 것은 다 똑같은 우리라는 기집애들이었다.

누구와 연애를 하니, 누구와 결혼을 할거니, 누구와 어떻게 살거니. 너는 뭘 하고 사니, 너는 어디 있어, 나는 어떻게 살아, 나도 연애를 해. 고등학교 때와 별반 다를 것없는 우리의 대화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그 색이 달라져 있었다.







보고싶은 사람을 제때 보고, 가고싶은 곳을 가보고, 먹고싶은 것을 찾아먹고. 고작 ~싶은 것들을 제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2010. 7. 18.

2010.07.18. 떼오얀센전.

떼오얀센전을 보기 위해 과천에 다녀왔다. TED에서 처음 그의 작품들을 보던 날,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 수많은 관절들과 진화(라기보단 작가를 통한 진화지만, 분명 진화다.)하는 형태와 모습들이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가본 과천과학관에서의 전시는 "고정"되있어 그 수많은 아니마리스들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다. 시연하는 두가지 작품만이 시간에 맞추어 앞뒤로 움직일 뿐이다. 그나마 체험하는 아니마리스 한마리가 있어서 앞뒤로 왔다갔다 했는데, 신기하고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움직이는 해양생물체가 온다였던가. 그 광고문구처럼 딱 초등학생을 타겟으로 한 전시여서 주말이나, 시간대가 잘 못 맞으면 초글링들과 무개념 학부모들과 함께 전시를 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시연중에 고무관절부터해서 발관절까지 일일이 다 손으로 뜯어만져보는 학부모 + 초글링, 이라던가 그깟거 촬영한다고 아이폰을 남의 눈높이로 든채 피해를 주는 지 마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 학부모,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신경도 쓰지 않으며 재미없으면 집에 가라는 협박을 하는 학부모 등이 있겠다. 2전시관에선 손대지말라는 표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기랑 신나게 무언가 조립해대며 놀다가 애기 손에 그대로 들고 가는 가족도 있었다. 아기를 보다가 "얘, 아가. 그거 놓고가야지."했더니 아기는 벙찐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이내 아빠(라는 놈)에게 달려가 "이거 놓고가야한대"라고 했더니, 아빠(라는 놈)이 누가 그러냐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내_돈_주고_전시_들어왔으니_다_내꺼.txt 랄까.



나오는 길에 15000원주고 에코백도 하나 샀건만, 이놈의 가방에서 괴상한 냄새가 났다. 차마 들고다니기 어려운 냄새여서 넣었다 뺐다 계속 반복했다지. 집에 와서 세제에 담가놨더니 또 기괴하게 부분 표백이 되어 본의아니게 빈티지백이 되었다.(라고 쓰고 그냥 물빠진 걸레가방이 되었다라고 읽는다.)

집에 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려서 와인과 맥주를 샀다. 나는 아직 긴축재정인 탓에 와인 한병을 들었고, 그는 저렴이지만 완소라는 와인 세병과 맥주를 사고도 4만 5천원을 냈다! 정말 완소인 가격이라고밖엔 말 할 수 없다.

분명 목적은 평양면옥 + 밀탑 우유빙수의 콤비를 즐기려고 했으나, 평양면옥의 대인배 양을 무시한 탓에, 압구정 현대 와인코너까지밖엔 가지 못했다. 후줄근한 아이가 와서 15만원부터 50만원까지 다양한 가격을 자랑하는 고가와인을 보며 침만 삼키니 꼬라지가 볼만 했겠다는 생각도 했다.


+ 지인의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름 긴 이야기를 들었고, 뜻밖에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진부하지만 뭉클하다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정말 어딘가 쥐여 뭉쳐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삶을 산다는 것에 있어 언제나 "능숙"하기만을 바라는 내겐 타인의 삶이란 언제나 비교의 대상이다. 그러지 말아야지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만. 나도 오롯한 내 삶을 살려고 한다.

2010. 7. 17.

2010.07.17 녹차머핀



녹차머핀을 굽는 것은 생각외로 내겐 어려웠다. 마음에 드는 맛이 나지도 않을 뿐더러 색깔도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같이 넣을 부재료도 선택할 만한 게 없었다. 종종 크랜베리를 넣는 레시피들을 보곤하지만 크랜베리의 새콤한 맛은 모카머핀에 넣는 블루베리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결국 럼주에 불린 크랜베리도 다른 견과류도 모두 버려둔 채 심플하게 아몬드 파우더만 넣기로 했다.

버터+설탕+바닐라설탕+아몬드가루+달걀+우유+밀가루+녹차

요즘엔 머핀종이도 깔지 않고 그저 머핀틀에 버터와 밀가루칠을 한 후 고대로 굽고 있다. 생각보다 모양도 맘에 들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게 구울 것같다. 적당한 쌉쌀함과 포슬포슬한 속살. 그렇게 달지않은 맛. 내 녹차머핀은 오늘 정말 마음에 드는 맛이다.







+코코넛 초코칩 모카머핀. 
코코넛 가루도 넣었는데, 모카향에 밀려서 그냥 초코칩 모카 머핀이 되었다.


2010. 7. 14.

Drawing. Bonjour, monsieur chat.




무슈가 어려워 맨날 몽시유..몽시유 했었다.
웬즈데이 스펠링 외우기가 힘들어서 웨드네스데이 이랬었다.




사크레쾨흐 성당 근처였던 것같다.

Drawing.

Drawing. 인어공주님

Drawing.

Drawing. Une tasse de cafe.




2010. 7. 13.

2010.07.14 꿈.

꿈을 꾸었다. 나는 이 세계가 아니라, 영화같은 낯선 배경속에 있었다. 길고 긴 건물과 초록빛 잔디밭, 그리고 뿌옇고 흐린 회색빛의 하늘이 있었다. 나는 의도치 않게 임신을 했다. 약간은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배때문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Y나 K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그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여기저기 그를 찾아다녔다.

어느 갤러리 1층이었다. 파티가 있었고,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 안에 들어간다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같았다. 들어가려고 했지만 나는 밀쳐졌다. 그 순간 뜨끈뜨끈함이 느껴졌다. 허벅지를 타고선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양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진득한 피도 아닌 그런 붉은 액체였다. 정말 소나기 내리듯, 터져나온 피는 꿈이었지만 정말 끔찍할 정도의 양이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렸을 때 내게 남겨진 말은 아기는 작은 크기여서 하혈하는 도중 그저 빠져나간 것같다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듯한 느낌이 너무 허무해서 어쩔 줄 몰랐다.

2010. 6. 22.

2010.06.22 조각커튼.













7*8사이즈의 조각천을 이은 패치커튼.




뭔가 만들어야지 하고나서 손이 움직이기까진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천성이 게으른 탓이라곤 하지만 하나를 만들어보겠다고 뭔가 꺼내서 시작을 하면 생각보다 만만치 않구나 하면서 지레 힘겨워하는 것도 이유가 될것같다.

조각천을 잇는데, 퀼트천이 대다수 인지라 30수, 혹은 그 이하 두께가 많았다. 이걸 오버로크도 아닌 지그재그식 재봉패턴으로 두두두 박으니, 그냥 말려서 박힐 뿐이었다. 린넨이야 그 빳빳함에 실 장력을 이겨냈겠지만, 얇은 면에게 내가 뭘 바랬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3조각정도를 망치고나서, 그냥 모르겠다-하면서 대충대충 이어붙인 패치커튼.


위에 연결은 그냥 집게핀으로 매달고 후크에 걸어버렸다.

2010. 5. 15.

무지개 자수 싸개 단추.




손으로 콩콩 찍어 만드는 싸개단추기구를 가지고선, 뭘 만들어볼까 내내 고민을 하다가 자투리 린넨 조각에 한땀 한땀 서툰 자수질을 했다. 엉망 진창이라며 누군가는 웃기도 했고, 안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낫다며 누군가는 칭찬을 해주었다. 아직은 모든 게 서툴어 차마 남앞에 내놓기 싫은 것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내 완숙한 아이들이 나올거라 기대한다. 영 무딘 손끝이 아쉽기만 하다.



2010. 5. 10.

2010. 2. 28.

Drawing. 붉은 실.







중국 민담이었나, 사람들이 태어날 때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을 묶어주는 노인이 있다고 했다. 한명의 손가락과 다른 한명의 손가락을 길고 긴 붉은 실로 엮어 운명의 연인으로 짝지워 준다는 이야기 였다. 꽤나 낭만적인 이야기인지라, 여러 만화나 드라마에서 이 모티브를 사용했었다.



가끔은 운명이란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