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27.

2010.07.27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서류와 엑셀작업을 했다. 6시간을 엑셀 함수와 파일링하는 데에 보내고 간신히 샌드위치 반쪽과 우유 한잔으로 하루를 보냈다.

저녁엔 인셉션을 예매해놓고, 그것만 기다렸던 것같다. 그런데, 엄마 생각이 났다. 얼마전 어둡기만 한 엄마 목소리가 맘에 걸렸다. 토요일날 지인의 집에 있을 때 전화가 오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다음날 아침에 받았을 때 혼자 내놓은 딸래미라며 걱정에 지쳐 엄마는 울먹이고 있었다.

나이가 스물여섯을 먹고, 혼자 산지 7년째가 되어도 엄마는 내 걱정을 놓지못한다. 당신의 거동불편한 허리도, 혹은 텅빈 주머니도 챙기지 않은 채 온 몸을 우리와 아빠의 형제, 그리고 외삼촌네 조카들을 키우느라 바빴을 뿐이다.

언제나 나는 엄마에게 타박을 했었다. 좀 꾸미고 살고, 좀 챙기며 살으라고.

엄마라고 그러지 않고 싶었을까. 엄마도 여자고, 엄마도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을까. 엄마는 젊은 시절을 고아가 되다시피한 세 조카를 키우느라 다 쓰고, 내가 어릴 때까지도 그 조카들을 같이 거두었다. 돌아온 건 차가운 소리 뿐이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힘을 내 키웠다. 조카들이 시집 장가를 가고, 내가 졸업을 하고, 남동생은 군대를 제대했다. 그사이에 엄마는 고달픈 일들이 참 많았다.

돈을 모을라치면, 아빠의 형제들이 가져갔고 할머니는 다른 아들들을 더 챙기는 그런 어미였다. 언제나 서운한 소리는 엄마에게 다 갔으니, 나같아도 안 살았을 이 집구석에 왜 사나 싶었다. 아들은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대꾸했고, 딸래미는 그렇게 살지말으라고 타박했다. 엄마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사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랬다. 참, 엄마는 두 자식을 바라보고 살았다.

옛날이야기 같은 우리 엄마다.

나는 엄마가 챙겨주는 생일날, 엄마가 하소연 하는 것이 싫어 집을 나와버린 못된 딸이었다. 내가 가진 것이 죄책감으로 변하는 것은 굉장히 빠른 시간이었다. 엄마나이 쉰을 훌쩍 넘어버린 시간동안 내 엄마는 스스로 꽃핀하나 사지 못하는 그런 오래된 이야기속에서나 나올법한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 참 많이 슬프다. 응어리가 가슴 한복판에 박혀 어쩔 줄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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