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0.

2010.08.10. 이놈의 나라에서 내가 안살아.

이 세상에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가지 요소는 이해와 쾌락과 허영심이다.

- 디드로




학교 게시판에 보슬아치란 단어가 올라왔다. 그것이 골라내는 방법등을 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올려놓았다. 그럼 보슬아치란 무엇일까. 된장녀와 비슷하게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하는 여자를 일컫는다.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우리말인 보지와 벼슬아치를 합쳐놓은 단어인데, 한마디로 여자임을 무기로 이익을 취하는 여자를 천하게 말해놓은 단어다. 관계에 있어 우월을 점한다기 보단 금전적인 요구를 대놓고 취하는 여자들을 말하는데, 요즘엔 점점 더 그 폭이 넓어져 인터넷에서 일반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듯하다. 단어를 보면 느껴지듯, 여자'도' 쓰는 말이라기보단 남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애초에 꿀벅지라는 단어가 불편하기 시작했던 것도 특정한 신체 부위를 우월함의 조건으로 드러내기 시작함이었다. 여성의 상품화라는 게 어쩔 수 없게 이루어지는 상황은 그 못지않게 드러나게 되는 남성의 상품화 상황도 그렇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꿀벅지라는 단어가 공식적인 언론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이 십대아이돌의 등장과 맞물린다는 것이 그리 긍정적이라곤 말할 수 없겠다. 건강한 젊은 여성의 허벅지를 꿀벅지라고 이야기를 한다는데, 그게 뭐가 기분이 나쁘냐고 묻겠지만 이 문제는 정말 명백히 페미니즘의 문제를 넘어선다. 적어도 꿀벅지란 단어 밑으로 달리는 덧글들이 꿀꺽 하앍하앍 먹고싶다라는 것을 보며 마치 김하나메일을 열은 것처럼 불쾌함을 느꼈다. 성폭력특별법 이딴 제도를 갖춘들 무슨 소용이겠나.
이런 꿀벅지에 대한 예찬과 논란은 결국 그런 건강미라고 이야기되는 능력을 갖추어야 우월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이 그런 조건을 손쉽게 얻기 위해 성형과 다이어트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나 기관을 찾아가는 것은 폄하하지만, 어렵게 해서라도 그런 능력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 논리인 것이다. 이런 건강미는 태생적이라기보단 아무리봐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미이다. 애초에 문제가 되는 것들도, 여성들에게 무게와 외모를 강요하는 사회가 문제였듯이 인간적인 평등을 주장을 하더라도 엄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인 문제가 이렇게 욕망으로서 나온다.

유해진과 김혜수의 논리에서도 비슷하겠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듯이, 어떻게 유해진이 김혜수를? 이란 입장이었고, 보통 잘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면 여자가 돈이 많거나 혹은 정말 사랑하나보다라고 평하던 사람들이 그들에겐 유해진에겐 뭔가 다른게 있겠지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내 기사들은 유해진이 가진 문화적인 능력과 지식등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취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보통 그 선에 미달하는 남성들은 불쾌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루저의 난이었다. 비슷하게 남자들이 그런 기준으로 여자를 평가한다면 아주 불쾌해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뭐냐면, 그런 건전한 사상을 가진 외국인 여성들에게 밀려 한국의 대다수의 여성이 루저가 되는 미녀들의 수다였다. 까기 위한 방송 그 이상이 아니었단 이야기다. 항상 나오는 말들은 왜 한국 여자들은-이란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루저녀 사건으로 보여진 것은 남성성의 지배력이다. 루저의 난으로 인해 그들에게 불편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 한달쯤 전 저 꿀벅지란 단어가 논란이 되었을 때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자. 그 단어가 유통되었던 것은 언론이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의 반발은 그저 불편함인 담론으로 끝나버렸다. 그저 유이가 "그렇게 불리면 고맙다 정도의 반응으로 그것이 괜찮은 단어임을 납득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유이의 조건이 그것을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었던가? 자신의 허벅지로 먹고사는 회사에 있는 연예인이?

루저녀와 된장녀와 보슬아치가 그렇게 다른 단어라곤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희화화되고 비꼼의 대상이 된다. 남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여성의 욕망이다. 그렇지만 그런 취향을 가진 여성의 무리가 여성을 대표하는가. 종종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의 무리가 나와 남성들의 의견을 비호해준다. 그런데 왜 그녀들은 언론의 정면부로 조명되지 않는가. 그러나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조롱섞인 말은 없다. 그렇지 않은 찌질남, 고추장남, 뭐 그런단어들이 있을 뿐이다.

결국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야기는 미디어와 인터넷은 남성성으로 점철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얼굴은 되도록 작아야만 하고 몸매는 될 수 있는대로 예뻐야 한다. 섹시하다는 이야기가 예뻐보인다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사회다. 여성의 '빼어난' 외모와 여성의 '된장질 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가짐, 여자가 갖추어야 하는  매너가 되어버린 사회다. 그녀들의 수다가 아닌 미녀들의 수다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일정 기준이상인 외국인 여자들이 자국 여자들의 무개념을 씹어줘야하는 게 조건인 것이다. 외국인 남자를 끼고다니는 여자는 양공주고 외국인 여자를 끼고다니면 우월남인게 그들만의 세상인거다. 그 문화에서 나온 단어들이 보슬아치다.

물론 초콜릿 복근이니 뭐니 해서 나왔던 근육같은 외모적인 문제보다도, 남성에 대한 기대중에 가장 강도가 높았던 것은 키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은 후천적으로 변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니란 거다. 남자 키는 백팔십이상, 이라며 공식을 붙이는 여자들에게 갖는 남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을 것같다. 돈? 벌면 되고, 얼굴? 고치면 되는 데, 키는? 고칠 수가 없다.

결국은 루저란 발언이 가지고 온 수십건의 소송과 제작진 교체 등 타부화됬던 사항을 끄집어냈을때 어떤 소란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증명되었을 뿐이다. 소위 경영진이라고 하는 사람이 인턴으로 들어온 루저녀를 하루만에 잘랐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건 루저 발언에 대한 응징중 하나였을 것이다.

만약에 나는 180 이상의 남자가 좋다라고 했어도 문제는 그리 커지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용어만 다를 뿐이지 실제 발언되었던 180 이하는 루저와 다를 바 없는 가치관이다. 하지만 그 발언은 위너가 아닌 루저쪽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받아왔던 키에 대한 스트레스를 '모두' 발산해내 풀어낼 수 있는 공공의 배설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런 발언을 다시 침묵하고 욕망을 이야기 할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진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로 진화했다며 최면을 건다. 그걸 발설하는 순간 가해지는 린치를 보았기 때문에.

여자들이 외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들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들의 생각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유, 빈유가 여자들도 사용하는 유행어가 되지 않듯이 보슬아치 또한 공용어가 될 수 없는 것이고 그 이유는 여성들의 육체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너는 내 발 아래에 있다는 남성성이 만들어낸 단어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지나친 외모지향성이 가져온 원죄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나 공중파에서나 루저라는 말만 쓰지 않았을 뿐, 대놓고 차별하고 모욕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대기업입사원서에 기입하는 것부터, 얼굴이 안예쁘면 몸이라도 예뻐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자기관리를 못한 탓이란다.

그래서 몇몇 여자들은 외모에 대한 결론을 그렇게 내리게 된다.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예뻐지고, 어떻게든 꾸며서 다녀야겠다. 추레하게 다니고 그러면 여자취급도 못받고 취업할 때조차도 얼굴로 밀리는 세상이니까, 예쁘게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러자. 그게 남는 장사다. 우리나라 여대생들은 조그마한 가방에 책은 가슴팍에 들고 다니며 하이힐을 신고 학교에 다닌다. 공부를 하고 왔는데, 그런데 그게 여자 외모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차별하는 남자들에게 대한 대항이었을 거란 생각도 한다.

아니 그래서 꾸미고 하이힐도 신고 하다보니 자기와 어울리는 것같은 남성을 갖고 싶은 거다. 평균적으로 160정도되는 키에 매일 하이힐을 신으니 170에 남자가 나보다 컸으면 하니까 180은 됬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차도 있으면 좋겠고하는 사고방식이 정착되는 거다. 결국엔 그 미녀들의 수다에서 "개념녀 서울대생"이라며 나오는 백팩메고 다닌다는 그 여자가 현실적으로 남자들에게 대쉬는 받았는지, 혹은 여자로서 대접은 받고 살았는지가 궁금해진다. 형이라고 불러 짜식, 이러면서 동성취급받으며 너도 꾸미면 예쁠거야 라는 식의 말은 듣지 않았는지 말이다.

대체 누가 누구보고 개념없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고, 누구보고 개념을 차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중2병, 허세, 보슬아치등등, 그 단어가 생겨난 것은 아마도 그것에 대해 비꼬고 싶은 욕구에 따라서 그 말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사회화속도에 못쫓아간다거나, 개인블로그 같은 것들에서 자신을 드러냄과 동시에 포장하려는 습관, 그리고 여성임을 무기삼아 입지를 세우거나 이욕을 채우려는 사람들, 그러나 그 단어들이 끄집어내여 공공연해지면서 그 단어가 해당사항이 아닐지라도 피해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동안 스타벅스가면 된장녀라는 말이 나왔을 때, 단순히 미니홈피에 '스타벅스에서 누구와' 하며 일기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버테러를 당한 선배이야기처럼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가 된장녀였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왠지 꺼리낌해졌었다. 무언가 글을 쓰고 표현을 하면서도 이게 허세일까, 이건 중 2병인가 하며 신경이 쓰이고 어느 순간부턴 누가 밥을 사주더라도 내가 무개념인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해서 그러지말라해도 불편하지 않기 위해 찻값을 더 내고, 영화를 사곤 했다.

꿀벅지 논란이 있었을 때, 초콜릿 복근이 나오며 남성들은 그것도 불쾌하다며 그것도 쓰지말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것이 당연하게 불쾌했다면, 꿀벅지 논란처럼 그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남성들에게서 나왔어야 했던 문제라고 생각한다. 루저의 난처럼. 내가 보기엔 꿀벅지 사용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억지로 끄집어낸 문제라고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성적 불쾌함을 먼저 느꼈다. 정말이지 찌라시수준의 내용으로 도배가 된 미디어들이 고급화되긴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의 언어적인 표현선은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누구를 보며 맛있게 생겼다, 혹은 따먹고 싶다고 수군대는 말만큼이나 섹스어필을 넘어선 단어이기 때문이다. 너 매력있다의 선을 넘어선 거다. 그렇게 따진다면 병신도 그냥 장애가 있는 몸일 뿐이다. 단어를 사전적인 의미로만 이야기한다면 어떤 단어도 가치중립적이게 된다.

성교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교와 관계나 빠구리, 씹질등 전혀 다른 맥락을 가진 단어들이 있는 것처럼 그게 뭐 어떠냐 상관없으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더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할 것이다. 섹시라는 말은 너무 남용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섯살배기가 티비에 나와 봉춤과 랩댄스, 섹시댄스를 추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처럼. 꿀벅지란 단어가 가지고 오고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최소한 대체로 은어로 사용됬던 단어가 대중적인 매체에서 타이틀로 사용되는 것이 정상은 아니란 거다. 원래 공격하는 가해자는 그 심각성을 모르는 거야 당연한 거고, 피해자는 악다구니써가며 소리쳐봤자 제 3자가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이 되는게 비일비재 하지 않은가.

다시 보슬아치로 돌아가서, 여성성을 무기로 해서 남자에게 돈을 요구한다면 그걸 거절하면 끝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보슬아치란 단어는 그런 여자에 대한 비꼼이 아니라 너랑 데이트 하고 밥사는 돈을 내는데, 네가 섹스를 해주지 않으면 네 얼굴과 '보지'가 벼슬이라고 그리 비싸게 구느냐.라는 굴욕적인 어감이 들어가 있다. 그네들에겐 장희민도 보슬아치고 대다수의 여대생도 보슬아치다.

혹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구조가 문제가 아닌가. 알파걸이네 뭐네 하며 만능이길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 여자들이 자신들의 밥줄을 쥐었다 피는 게 싫고, 거기다 성적인 위치조차도 윗선을 지키는 게 불쾌한 게 아닌가. 너와 나는 평등하다면서 정작 평등함은 개나 줘버린 사회 아닌가. 알파걸과 수퍼맘이 말하는 게 무엇인가.

양성평등을 부르짖으며 여성에게 노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우리에게 일할 것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결혼을 하면 잘라버리는 회사가 있을 뿐이다. 커리어를 쌓기도 전에 결혼을 동반 선택한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별이며, 노동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들에겐 천박한 창녀근성, 속물근성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경력과 경제력을 위해 결혼을 뒤로 미루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 시집=가사노동을 선택했던 부모님 세대보다도 더 일을 하라고 외친다. 된장녀 비판에 순결, 속물근성퇴치를 외치며 여성에게 계몽을 요구하는 게 신기할 뿐이다.

어느 곳에서든 꿀벅지에 대한 항의글 밑에는 오크녀가 네 허벅지도 오크니까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달린다. 그런 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그런말이 다가온다. 왜 인생이 다큐냐며. 웃자고 한 이야기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고 한다. 아니 웃자고 한 이야기가 웃을 수 없을 정도인데 웃을 수 있겠는가. 시대를 막론하고  하위문화가 올라와 대중문화가 되곤한다. 어찌보면 고상한 척만 하는 품위있는 세상에 대한 저항감이기도 하겠다. 그렇지만 쇼는 쇼고, 현실은 현실이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싶지만 결론은 하나다. 보슬아치도 싫고 꿀벅지도 싫다. 천박하고 저급한 시선으로 만들어진 단어 자체가 불평등하고 불쾌해서 싫다. 그것을 긍정하며 맞장구치는 비뚤어진 사회 구조 자체가 싫다. 만약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들단어로 공식매체에 꿀벅지와 보슬아치에 대한 단어가 나왔다 치자. 그쪽의 개념이 머리에 꽉꽉 찬 여자들은 그 단어를 긍정할 것인가? 자신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구짓을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후회가 드는 여자라면 안 만나면 그만이다. 왜 만나가며 욕을 할까. 명품 좋아한다고 치자. 그건 취향이다. 그게 좋다면 아울렛에 가서 뒤져가면서라도 사던가 혹은 특에이급이라면서도 짭을 살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으면 돈이 있어도 딴거에다 돈을 쓰지 명품을 사지 않는다. 명품을 좋아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갖고싶어하는 게 문제인거다. 그런데 그 여자가 몸매가 예쁘다거나, 얼굴이 예쁘다고 해서 접근을 하고, 그렇게 돈을 쓰는 남자들이 있다. 그러고나서 다 사주고 돈쓰고나서 사귈래? 하고나서 튕기면 아 이년 보슬아치 하고선 욕하는게 싫은거다.
이상한 여자들때문에 보통 여자들까지 싸잡아서 "요즘"한국 여자들 어쩌고 하는 시덥잖은 글들을 보면 그냥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나한테 다 뜯어먹어? 이 개념없는! 싶으면 안 만나면 되지 않나. 그냥 그 글들을 보면서 나는 해당안되니까 열받을 필요없어라고 생각되는 동시에 나는 그보다는 개념차다며 혀를 차면서도 좀 짜증이 난다. 여자가 무슨 사고능력판단능력이 남자보다 딸리는 하등동물인것마냥. 똑같이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는 거고, 남자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자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말마따나 끼리끼리노는데, 내 주변에선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별창녀니, 생계형 소개팅녀니, 뭐 그런 여자들말이다. 더치페이더치페이 하지만 정작 동성친구끼리 밥먹으러 가서도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다. 정없고 계산적이라고 생각되서다. 이번엔 내가 살게 가 입에 붙었다. 그럼 다음 번엔 상대한테 맘 편하게 얻어 먹는다. 혼전 성관계가 당연한 것 같은 현재에도, 내 주변엔 혼전 성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여자가 수두룩하다. 추녀들인거 아니냐고? 그 답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것이다. 그게 안 예쁘다고 덜 하고 예쁘다고 더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자기 몸뚱이 무기삼아 미래를 갈구하는 여자들도 있는 것처럼 내가 보기엔 돈주고 안마방을 가는 사람과 원나잇스탠드를 위해 자기를 과시해가며 여자를 사러 가는 남자들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생각보다 직장을 다니는 남자들 또한 자신과 수준이 맞는 경제력을 가진 혹은 안정된 직장을 가진 여자를 원한다고 하지 않는가. 여자들이 키를 보는 건 병신짓이고, 남자들이 몸무게를 보는 건 병신짓이 아닌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스펙을 요구하듯, 남자들도 여자들에게 스펙을 요구한다. 혼수때문에 결혼식 엎어지는 일은 한두번인가. 내가 집을 샀는데 넌 왜 그정도 혼수밖에 못해오냐며 구박을 하는 남자들도 여전히 있다. 그들에게 그렇다고 해서 자슬아치라는 말이 붙냐 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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