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22.

2010.08.23.

꽤나 먹먹해진다. 엄마를 생각한다는 것은 더더욱이나 감정적이게 만든다. 어릴적엔 그저, 가끔 힘들어하던 엄마가 스무살넘어서 여러가지 일이 겹쳐지면서 젊었을적 고생과 함께 큰 병을 짊어지게 되었다. 몇번의 수술이 이어지고, 내가 걱정할까봐 그런 사실을 숨겼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참 저만큼 가라앉는다.

엊그제 밭에 처음 가보았을 때, 조롱조롱 열린 모든 것들이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허리가 아프면서도 굳이 그 몸을 끌고 밭에 가서 온갖 식물들을 거두는 엄마는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친구와 그런 말을 했다. 엄마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가족애를 우리가 가질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우리 세대의 여자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들이 힘들고 어렵다면 갈라서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엄마에게서도 힘들면 이혼하고 새로 살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정작 그네들은 우리의 혼삿길 걱정으로 이혼한다는 말만 해왔으면서.

내가 먹는 고추장 한숟갈, 된장 한숟갈, 호박잎 한줌 하나하나 모두 엄마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다. 결코 따라할 수 없는 맛과 그 연륜의 맛말이다. 아프면서도 내게 모시잎으로 만들고 양대콩을 박아넣은 떡을 한봉투 담아 안겨주는 엄마는 그저 건강하고 안전하게 서울에 있으란 말을 한다.

자나깨나 아들걱정보단 딸걱정이 먼저인 엄마의 입에서 언젠가부턴, 죽음을 준비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 죽기전에, 혹은 엄마가 얼마 못살것같다는 말은 언제나 그렇듯, 상실을 가장 무서워하는 내게 그 무엇보다도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와 헤어진다거나, 누군가와 이혼한다는 것보다 더 무섭기만 한 일이 바로 엄마와 이별하는 일인 것같다. 얼마전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나서 정말 살기 싫다는 말을 했었다. 내 생일 다음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어 집을 일찍 나서 서울로 왔었다. 그 후 만 하루동안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나는 행여나, 엄마가 현대인의 사망원인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살이라도 했을 까봐 받지도 않는 전화에 계속해서 전화를 해댔었다.

엄마는 내게 강압적인 말로 내 인생을 고치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결코 엄마의 욕심때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조금 많이 힘들고 맘고생도 했지만, 엄마의 인생을 보면 엄마는 내가 돈때문에 혹은 그런 학력문제로 인해 맘고생을 하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고졸이라고 무시받고, 직업이 없는 가정주부라서 괄시받았던 우리 집안에서의 삶은 내가 생각해도 왜 사는지 궁금할 정도의 고생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엄마의 삶은 인간극장에 나와도 될정도로 맘고생 몸고생 많은 삶이라, 엄마의 굵은 손마디와 다양하지 못한 옷장만 봐도 눈물이 나올 정도다. 남들은 다 사보는 좋은 핸드백 하나 못쥐어보며 살아온 엄마의 오십오년 인생은 그렇게 내 맘에 잔가시처럼 밟힌다.

호박잎을 따고, 풋고추를 따면서 엄마는 내게 그런말들을 했다. 네가 언젠가 아이를 낳고 찾아와도 우리집 마당에 풀장이 있고, 이런 개울가에서 애들 장구질치며, 이렇게 좋은 감자랑 고구마랑 멕이고, 그러고 놀다가면 얼마나 좋겠니. 생전 생각해보지도 못한 평안한 일들을 엄마는 내게서 찾고 있었다.

그런 존재가 내 새끼들에게도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한다. 언젠가 그저 유학길에 올라 외국에서 살면 좋겠다 하다가도 엄마를 생각하면 그게 참 힘이 든다. 외국으로 시집을 간 언니들도 꼭 하는 말이 언제나 밟히는 게 엄마의 모습이랬다.


그냥 맘이 무겁다. 참. 요즘엔.

댓글 없음:

댓글 쓰기